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is Ku Mar 12. 2024

샴푸를 준 독일남자가 계속 생각나

왜 나는 당신의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은 걸까?

라오스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처음 간 라오스의 매력에 빠져서 제대로 여행 모드에 걸려버린 채로 계획에도 없던 장기 여행을 하고 있는

아나이스!

아직 태국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가 있다. 심지어 그와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채 1시간도 되지 않을 텐데 계속 생각나는 이가 있다.







처음 마주친 건 몽 빌리지 몽족 마을 축제에 갔을 때인데 하지만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몽족 외에 외국인 남자가 그 마을에 잠시 스쳐 지나간 정도만 인지했을 뿐이니까. 마침 마을에 올 때 배를 같이 탄 여인과 온 사람인줄로만 알았기에.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그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4명의 싱글 트래블러가 그저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그도 거기에 있었다.







처음에는 낮에 마주친 그가 같은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저녁의 그는 금발 머리를 풀어서 아주 근사해진

상태로 모델처럼 우아하게 캣워크 하듯이 걸어서 우리 자리로 왔다. 쌀쌀한 밤이라 우리는 모닥불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엔 독일인이 2 그리고 뉴질랜드인 1 그리고 나. 나만이 여자였다.


여행자들이 모이면 으레 하게 되는 이야기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했다. 어느 나라 출신에 어느 도시에서 왔고 어느 정도 여행을 계속하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등 각자의 동선을 두서없이 이야기 나눴고 서로에 대한 느낌도 간간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의 하루가 어땠는지도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뭔가 이럴 때 여행자들 간의 동지애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은데 항상 이런 밤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날이 특별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사운드 엔지니어였고,

한 번도 결혼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베지테리언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 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


"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아!"라고 말해버렸다.


스테이크나 육식을 너무 좋아하는 내가 맘에 든 남자에게 고작 한 소리가 네가 야채만 먹으니까 나는 널 사랑할 수 없어라니..ㅋㅋ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지만 자동반사적으로 그 말부터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는 내 주변 나의 가족도 다 육식을 한다고 각자 먹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착한 남자.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건데도 그의 말하는 태도마저 맘에 드는 거다. 역시나 '금사빠'인 건지.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같이 셰어 하면서 함께 먹는 그런 걸 늘 바라왔고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기에.

그래도 그가 맘에 든다는 느낌을 내내 받으면서 넷이 한참을 더 이야기 나눴다.






우리는 이런저런 여행의 이야기. 삶의 말도 안 되는 불합리성 등 그냥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하다가 하다 하다가 나라 이야기까지 독일. 뉴질랜드 이야기를 한참이나 더 하다가 각자 호텔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혼자 여행하다 보니 그저 그런 숙소에 머물러서 인지 계속

머무는 호텔에 내내 샴푸도 없다고 하니 그가 샴푸를 많이 가져왔다며 자신의 것을 하나 주겠다고 도중에 말했지만 진짜로 그가 주려는 지는 몰랐다.

그리고 나는 정말 비누로 내내 감아서 머리가 뻣뻣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금발머리가 찰랑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하면서 그의 방에 잠시 따라갔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나도 둘러본 호텔이었고, 배가 내리는 바로 앞의 방이었다. 샴푸를 내어주고는 잠시 방의 커튼을 제치며 방을 보여준다. 리버뷰가 보이고 해먹이 있는 소탈한 방. 내방보다는 살짝 좋아 보였지만 다 고만 고만한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이때 전부터 나는 두드러기가 심해져서 자꾸 가려움증이 생기고 이때 목에 상처가 많이 생겼는데 마침 옆방의 뉴질랜드 친구가 자신에게 약이 있다며

조금 주겠다고 하여 그에게 약을 받아서 내방으로 가려는데 친절한 독일인 그가 바래다주겠다고 하는 거다.






그들의 호텔에서 나의 호텔까지는 아주 가까웠고, 그는 방 앞에 왔고 상처가 약을 바르기 애매한 곳에 있는 걸 알고는 발라주겠다고 했다. 방을 보여주기가 어색했지만 나 역시 가이드하듯이 나의 방은 이래. 이러면서

오픈했고, 우리는 각자 손을 씻고 그는 약부터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가 샴푸를 준 것에 대해 천천히 조금씩 아껴 쓰겠다고 했고 오래도록 고마움을 기억할게.라고  이야기하고는 뭔가 그에게 줄 것이 없나 하고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꼭 지금 해도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 순간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뭔가 영화에서 처럼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그저 비스듬히 누워서 그는 이야기를 했고, 나 역시 그랬지만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 나는 먼저 굿나잇을  말했고. 우리는 내일 볼 수도 아님 어딘가에서 보자며 애매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가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았고, 나 역시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일을 정하지 않고 여행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냥 하루 더 그 동네에 머물면 가기 싫어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을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그의 방에 잠시 들렀는데 그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차마 그를 깨울 수 없었다.

그리고 폰 카메라를 무음으로 하고 그의 모습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각인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기에 문득문득 그가 떠오르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기분 좋은 밤이었고. 다시 한번 여행을 다시 시작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이전 01화 구교환을 닮은 일본 남자에게 빠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