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넘기 스물다섯 번째 주제: 노랫말
요즘은 마냥 기분 좋아지는 노래가 좋다. 두 번 세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즉시 기분을 붕 띄어주는 노래가 좋다. 노랫말보다는 음률에 기댄다. 무조건 가사를 보고 난 후에야 그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던 때와 다르다. 이제는 한두 마디면 충분하다. 노래가 상당 부분을 뒤집어 놓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귀에 꽂히는 소리의 가락이 하루의 전부이기도 했다.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 발매 시간에 맞춰 편의점 앞 벤치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며 아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노래가, 노랫말이 내 속을 그토록 휘저어놓진 못한다. 매 끼니 정성스레 차려먹던 밥에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비타민 젤리가 된 나의 노래. 하지만 먹고 나면 달콤하니 기분이 나아지는.
흥얼거림.
우리 엄마는 변진섭의 노래를 버릇처럼 흥얼거렸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 설거지를 하다가도, 밥을 짓다가도 부엌에 서서 흥얼거리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밥을 짓다가 어떤 노랫말을 부르나? 남편과 나는 보통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나머지 한 사람이 이어받는 편이다. 열창은 점점 성악이 되고, 우리의 자동차는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흥이 많은 사람들의 흥얼흥얼. 아무튼 나의 흥얼거림은 엄마에게서 왔다.
반면 아빠는 나훈아를 좋아할 뿐 흥얼거리진 않는 사람. 그런 아빠가 노래방에서 유일하게 불렀다는 곡은 김수철의 ‘내일’ •흘러 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방랑 길을 나 홀로 가야 하나 한 송이 꽃이 될까 내일 또 내일• 언젠가 아빠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까?
자주 들어온 노랫말과 꼭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노랫말. 그리고 나의 노랫말.
•누구든 내게 상관 안 하고
내가 누굴 기다리지도 않고
가끔은 외로운 이 순간
난 지금 즐기고 있어
뭐든지 내가 하면 되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저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볼까
저 파도를 따라 끝없이 떠나볼까
두 팔을 벌리면 날개가 돋아날 걸
가슴을 연다면 쪽빛이 가득할걸•
눈과 우박이 쏟아지지만 이추룩 요망진 봄이라 그런가? 산들산들한 노랫말만 입에 담고 싶다. 한두 마디의 노랫말로 기껏 문을 열어주는 마음으로, 서투르더라도 한두 마디의 용기를 내보고 싶어지는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