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넘기 스물네 번째 주제: 루틴에 관하여
열음이 신혼집에 놀러 왔던 날 내가 했던 말은 이렇다.
”저는 요일을 정해두고 청소해요. 정해두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해서,
월요일은 청소기를 돌리고
화요일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수요일은 화장실
목요일은 침대와 소파
금요일은 유리창과 거울“
이 정도면 내가 얼마나 루틴에 진심인지 감이 올 것이다. 루틴에 관하여 쓰라니, 김주현에 관해 쓰라는 거잖아! 하며 호기롭게 첫 문장을 잇는다. 물론 열음에게 말했던 청소 루틴은 일을 시작하며 무산되었다. 전업주부일 때만 가능한 루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도 벅찼다) 다만 극한의 루티너는 아수라장이 된 루틴을 바라보고만 있진 않는다. 상황과 시간에 맞게 척척 쌓아 올리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은 직장인 버전의 느슨한 청소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월요일 점심시간임에도 많은 사람. 그 사람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있었으니, 푸르스름한 작은 잔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상을 받은 작가들의 애장품을 전시하는 공간에 있었다. 푸르스름한 잔은 한강 작가님의 애장품이었다. 작은 잔 옆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한강 작가의 애장품
‘작은 찻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0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0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03. 보통 찻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어떤 사람이 오랜 시간 그 루틴을 지켜낸다는 것이 꼭 기도처럼 느껴진다. 내가 영화 ‘퍼펙트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를 오래도록 좋아하게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퍼펙트데이즈는 도쿄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지그시 담은 영화다.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낄 만큼 주인공은 매일을 똑같이 살아낸다. 이른 새벽 이웃집 할머니의 빗자루질 소리에 깨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가벼운 단장 후 식물에 물을 주고 동전을 챙겨 캔 커피를 마시며 올드팝 한 곡을 듣고 일터에 도착해 아주 말끔하게 화장실을 청소를 한다. 그 삶의 반복을 닮고 싶다. 부지런함을 말하고픈 게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묵묵해지는 것. 이에 단련된 사람들. 그 관성이 부러운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브이로그를 보는 일이다. 그들의 영상 또한 앞선 영화처럼 반복된 일상을 보여준다.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지만, 1년, 5년, 10년......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오랜 친구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문수는 가끔 묻는다. “브이로그가 재밌어?” 그렇게 묻는다면, 고즈넉하기만 한 영상들을 재밌다고 해야 할지, 누군가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일상을 지켜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단어는 ‘위안’이다. 우리 삶은 시시콜콜하고 아웅다웅하고 왁자지껄하다가 꾸역꾸역 하곤 비틀비틀하며, 가끔은 어떤 단어도 붙일 수 없는 날이 온다. 영상 속 평소보다 정돈된 삶을 비추는 그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럼에도 계속 자신인 채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면 위안이 된다. 우리가 달마다 기꺼이 제 몸과 맘을 다해 꺼내는 이 글은 어떤가. 서로가 느슨히 멀어져 각각의 상태를 겪으며 지내다가 이 글 속에서 팽팽하게 엮인다. 여전히 내가 나인 채로.
극한의 루티너가 한강 작가의 애장품 설명문에서 가장 오래 바라본 부분은 반복했던 일과가 아닌, 괄호 속 문장인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이다. 사실 히라야마도 늘 그러지 못했다. 동료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조카의 방문에 루틴을 지키지 못했던 날도 있다. 나의 지난 한 달도 그랬고, 앞으로의 날들도 괄호 안에 항상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를 적어야만 할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푸른 잔이 내게 말한다. 억척스럽게 지켜내는 루틴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사실 내가 동경하는 이들의 삶은 몇 가지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오히려 반복과 반복 사이에 있는 괄호 속 문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글이, 글을 쓰는 행위보다 글과 글 사이 삶으로 시작하듯이. 늘 성공하진 않더라도 다시금 푸른 잔의 안쪽을 바라보는 용기로 살아간다. 그렇게 사는 동안 시간은 흐르거나 쇠퇴하지 않는다. 누적된다. 해마다 늘어나는 고목의 나이테처럼. 결국 내가 탐하는 것은 보기 좋게 짜인 루틴이 아니라, 괄호 속 문장에 굴하지 않는 용기다. 결국 새겨질 나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