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재주넘기 서른 번째 주제: 이상형

by 오말초

“지금부터 이상형 세 개만 말해봐. 내면, 외면 상관없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세 가지.”


(여러분도 답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1. 신앙적 가치관이 맞는 사람

2.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3. 몸이나 얼굴선이 얄쌍하기보다는 두꺼운 사람


1번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고, 2번을 답하고 나니 문득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나는 오빠랑 대화하려고 결혼한 것 같아”라고 말하던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대화가 충족되지 않는 사랑에는 기묘한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고, 저는 그 결핍이 두렵습니다. 단순히 유머 코드나 대화의 결이 맞는 것을 넘어 대화를 잘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3번은 외적인 이상형인데요. 아무래도 아빠에게서 온 영향인 것 같습니다. 저희 아빠는 완전한 통뼈에 큼직한 이목구비와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세 가지 이상형을 답했습니다. 그런 제 앞에 또 다른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세 가지 조건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A와 B가 네 앞에 나타났는데, 네가 B를 택했다면 그 이유가 뭘 것 같아?”


“으..음.. …. B가 나를 더 생각해 주지 않았을까? 걸음걸이를 맞춰줬다든지”


“그게 네 진짜 이상형이래”




비교적 오래전의 대화가 다시 떠오른 이유는 걸음걸이 때문이었습니다. 회사 입사 후 동료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은 “주현 샘은 걸음이 진짜 느려요”인데요. 저는 걸음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느릿느릿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걸음 또한 빠르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놀랄 정도인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1분이라도 단축시키는 것이 인지상정인 직장인의 세계에서 제 걸음은 용납할 수 없는 걸음인 셈이죠.


문득 제 옆에서 가장 많이 발걸음을 맞췄을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남편과 함께 걸을 때는 한 번도 걷는 속도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4년 동안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던 질문을 해봅니다.


“오빠는 걸음이 빠른 편이야?”

“느린 편은 아니지?”

“그럼, 나랑 걸을 때 느리게 걷는 거야?”

“그렇지?”


어떤 배려는 끊이지 않고 한결같아서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제 삶을 지탱해 줍니다. 어쩌다 한 번 금이 가지 않는 이상, 여전히 누구의 배려로부터 일상이 지켜지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B를 선택한 이유는, 제 걸음에 의문을 품지 않고 함께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린 날이면 같이 구름을 보고 빠른 날이면 지치지 않게 물을 건네주고 넘어져 있으면 억지로 일으키지 않고. 내내 함께 걷는 사람이 B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 재주넘기 서른 번째 주제: 이상형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