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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의 파이널 콜 : 비행기를 놓쳤다

승무원도 비행기를 놓치나요?

by 이가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이야기. 비행기를 놓치거나 파이널 콜을 듣고 게이트로 달려가는 이야기 말이다.

승객들이 비행기를 놓치는 것처럼, 승무원도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4년 3개월간의 비행생활 동안 두 번 정도 비행기를 놓쳤다.


스탠바이로 인천 비행에 불린 신기한 날이었다. 잠에서 깬 후 스케줄을 재확인하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인천비행을 받는 것이 한국인에게도 힘든 일이라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하루 종일 부모님에게 연락을 돌리며 짧은 서울 여행을 준비하기 바빴다. 비행을 받기 며칠 전, 나는 한국 휴가에서 돌아오고 난 후 바로 약속에 나갔었고 한국 비행을 가기 전 날에 이미 피곤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서울 여행을 다시 준비한다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인천비행을 출발하기 15시간 전, 가볍게 공부를 끝마치고 운동을 했다. 샤워를 한 후에는 몸이 긴장에 녹아들 듯 잠에 들었다. 브리핑이 시작하기 8시간 전 눈을 감았고, 그렇게 한참 잠에 들었다. 몇 번의 알람이 울리긴 한 걸까? 한 번도 들은 적 없다는 듯 또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전화가 두 번 정도 울렸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Hello?"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브리핑에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잠에서 깼다. 다급한 목소리로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을 했고, 회사는 20분만 줄 수 있다고 했다. 집에서 본사까지 1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나는 5분 안에 짐을 챙기고 유니폼을 입고 화장을 해야 했고,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분주히 움직였다. 본사에 도착해서 이민국을 무사히 통과했고 체크인 카운터에 서류 확인 절차들을 등록하는 참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싸늘함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 내 여권...."


한국 휴가를 다녀온 후, 여권을 비행 서류 가방 안에 옮겨 넣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던 나였다. 회사에서 준 20분의 시간에 맞게 도착을 했고, 무사히 이민국을 통과했지만, 가장 중요한 여권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본사 승무원들만 이용가능한 이민국은 등록된 얼굴인식으로 통과를 하기 때문에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케줄 팀에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고, 나는 자동으로 오프로드가 되었다. 그토록 받고 싶었던 인천비행을, 가장 가고 싶었던 인천 비행을 나는 놓치고 말았다. 그날의 불안과 좌절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기분이다. 그 감정들과 함께 회사의 경고장을 받았다.


이건 두 번째 이야기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인천비행을 놓친 이후로 알람을 10개를 맞추며 잠에 든다. 혹여나 깨지 못할까 봐 하나의 알림에 3번 이상 다시 울릴 수 있도록 설정을 해 놓았다. 결국 알람이 서른 번 울리는 셈이다. 나는 보통 출근시간의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혹시나 두고 온 물건이 있거나 저번처럼 여권을 놓고 오는 경우들을 대비해서다. 하지만 이 날은 3번의 비행으로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퇴근 후 잠에 들고일어나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밤 10시에 출근을 하여 오후 2시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새벽 3시에 출근을 해야 했다. 잠을 제대로 잤다고 하여도 몸의 피로도가 높은 상태에서 출근을 했다. 요즘 부쩍 위염 증상이 시작되어 공복 커피도 피했던 터라 더욱 정신을 잡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30분 전에 미리 도착을 한 후, 비행 준비를 하며 앉아있었다. 메모장에 적어둔 서류 리스트들을 재차 확인하며 안도를 했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나는 여유로이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민국 통과 시간이 되어 들어갔고, 체크인 키오스크 앞에서 사원증을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손에 잡혀야 할 사원증이 잡히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유니폼이 텅 비어있는 기분이었다. 자주 가던 카페의 위치가 나 몰래 옮겨져, 찾을 수 없는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다시 다급해졌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 사람은 혼을 냈고, 다른 한 사람은 본인의 일처럼 도와주려 애를 썼다. 함께 사는 플랫 메이트도 비행을 간 상황이라, 사원증을 구할 방도가 없으면 다시 자동 오프로드였다. 시간을 2시간 전으로 되돌린다면 공복이라도 커피를 마시겠노라 의미 없는 다짐을 하며 서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몸짓으로 서성이던 그때, 스케줄팀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케줄팀과 다른 직원분들이 방법을 찾아주셨고, 다행히 이번에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마른 채로 세큐리티를 통과한 후, 브리핑 룸으로 들어갔다. 브리핑은 끝나기 1분 전이였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쥐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 싸해지는 공기와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내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무장은 비행 내내 꼬투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었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비꼬는 투를 가볍게 무시했다. 다행히 이틀간의 여정을 함께할 팀원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재학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다닐 때도 불가피한 지각을 한 적이 한두 번 정도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30분, 많게는 한 시간 정도를 일찍 도착하는 편이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하루가 끝이 날 때까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럼에도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출근은 비행기를 이륙시킴과 동시에 시작된다. 때문에 승무원이 비행기를 놓친다는 건, 그날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승무원 면접을 준비하는 당시, 시간에 대해 엄격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늘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며 1분 단위로 시간을 대했다. 그런 사소한 일상의 훈련들이 승무원이 되고 난 후 도움을 줬다.


'시간'은 되돌릴 수도, 앞으로 먼저 당길 수도 없다. '혹시나'라는 단어와 '시간'은 친밀하다. 혹시나 일어날 일을 대비하면 이미 일어난 사건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승무원이 되고 난 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고, 매일 나의 시차는 달라졌다. 분명 2일 아침 10시에 출발을 했지만, 도착을 하고 보니 그 나라의 시간이 다시 2일 11 시인 경우가 있다. 나의 시간은 제자리에 우뚝 서 있지 않다. 늘 이동하고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더더욱 시간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한다. 나의 착각으로 비행기를 놓치지 않게 하염없이 시간을 체크한다.


이런 행동들이 어느새 나를 시간에 스며들게 했다.

마치 시간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지구는 거대한 우주의 작은 점이고, 시간의 존재이다.

나는 지구를 손에 넣었고, 결국 시간을 움켜쥔 셈이지.


승무원,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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