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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위의 품격, 항공사 유니폼

활주로 위의 모델. 항공사의 시그니처. 승무원 유니폼을 말하다.

by 이가은


Runway (런웨이)

모델들이 걸어가는 무대이자, 비행기가 이륙을 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한 영어 단어 Runway.

나는 오늘부터 런웨이를 '승무원들의 무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륙을 위해 준비를 하는 비행기 안, 그 누구보다 빛나게 준비하고 있을 승무원들과 캡틴. 그들을 런웨이 위의 모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유니폼'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학생들의 교복, 대학생들의 과복, 특정한 직업의 제복들까지. 소속감을 가지게 해주는 'Uniform : 제복' 덕에 특정 단어만 떠올려도 이미지가 상기된다. 그중 항공사 승무원들의 유니폼은 그 항공사의 시그니처라고 불릴 만큼 마케팅의 파급력이 강력하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유니폼은 단순히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헤어스타일이나 네일 그리고 립스틱 색까지 회사에서 지정해 준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 회사를 대표하는 첫 번째 이미지가 '승무원 유니폼'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다. 그것이 우리들의 유니폼이다. 그 유니폼이 우리를 활주로로 데뷔시키는 것이다.


"엄마, 저 항공사 승무원들 좀 봐. 진짜 멋지지 않아?"

"우와 다 같이 가는 게 너무 멋있어."

"사진 찍어도 되려나? 진짜 멋있다."

"저기 어디 항공사예요? 유니폼이 너무 멋있어서 다음에 꼭 타보고 싶어서요."


항공사 승무원이 되기 전, 내가 했던 말들이다. 항공사 승무원이 된 후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본 시선들이 누군가에게 쌓였듯이, 난 누군가의 시선이 쌓여 어느샌가 멋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짐을 찾고 도착장의 문이 열리면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요청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수줍게 손을 흔든다. 무거운 배낭가방을 들고도 우리에게 달려와서는 항공사의 이름을 묻기도 했다. '유니폼'을 입은 순간, 우리는 항공사의 얼굴이 된다. 명품 브랜드의 엠버서더가 존재하듯 우리 승무원들 모두는 항공사의 모델이다.


유니폼에 어울리는 화장을 하고, 립스틱을 바른다. 그 후에는 지겹도록 걸친 유니폼을 입는다. 지겹고 지겨워도 또 예쁘다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어본다. 이 모습이 오늘 만날 승객분들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 은근하게 기대를 할 때도 있다. 승객분들이 탑승을 하기 1분 전, 옷매무새가 단정한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하나 둘 승객분들이 탑승을 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탑승이 완료된 후에는 안전 영상이 틀어져 나온다. 기나긴 안전영상은 관심이 없다는 듯 어린아이들이 수줍게 우리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준다. 비행이 끝나고 나면 승객분들은 인사를 하고 떠난다. 떠나기 전, 우리의 유니폼을 입어보고 싶어 하는 어린 승객분들도 많다.


우리의 유니폼에는 미소가 담겨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무대에서 빛나는 모델이라는 듯 사람들에게 소개해준다. 비행이 끝나고 나면 땀냄새와 짙은 향수냄새가 섞인 유니폼이 되어버리면, 비로소 '나만의 색'을 가진 유니폼이 되는 것만 같다. 캐리어를 끌고 또각또각 발을 맞춰 걷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을 볼 때면 나의 과거가 문득 떠오른다.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 그들을 바라보았던 나의 눈 빛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난 더 힘차게 걷는다. 어느샌가 다다른 게이트 앞, 큰 유리창 너머에 있는 우리 항공기와 그 앞에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섞여 비친다. 이 항공기와 함께 런웨이를 당당하고도 힘차게 걸어 나갈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인다. 유니폼은 항공사를 빛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사명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소속감과 사명감.

유니폼이 만드는 두 개의 강력한 단어.

그리고 그 단어들은 우리를 성장시켰다.



[번외]


유니폼, 한국어로는 제복을 말하는 '옷'에는 신비함이 묻어있다.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주기도 한다. 항공사 승무원의 유니폼뿐만이 아닌, 학생들의 교복이나 의사의 가운 혹은 국가대표들의 제복 등. 이 모든 것들은 '나'로서만 살아가던 삶에 또 다른 나의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 내가 소속한 그곳에서 당당히 '존재'를 부여받기도 하고,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까지도 '의무'를 다 하게 만든다. 그들이 입은 제복 뒤에 숨겨진 그들 '개인의 모습'이 궁금할 때가 있다. 제복을 입었을 때는 똑같이만 보이던 그들 각각의 삶과 모습들이 궁금해진다. 제복은 사람을 얼마큼 성장시킬까?'사명감'을 부여받은 우리의 모습에서 '어른'이라는 단어들이 비추어질까?


제복을 입은 사람들도, 제복을 입지 않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우리 삶의 엠버서더처럼 살아갔으면 한다.


결국, 우리의 삶이 명품이기 때문에.

우리가 곧, 브랜드 그 자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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