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빠르다. 올해 아이들을 만나 참 괜찮은 아이들을 만났다고 기뻐하던 것이 3월이었다. 달력은 어느새 11월에 가까운 10월의 마지막에 도착했다. 추석까지도 따뜻하던 날씨가 이제는 서늘해져 샤워를 할 때에도 따뜻한 물줄기 없이는 덜덜 떤다. 차가워진 날씨에 길거리를 지날 때면 대니와 나는 뜨거운 호떡, 붕어빵 같은 간식을 찾는다. 겨울철 간식은 용암처럼 달궈진 달콤한 속에 입천장을 데일 듯, 말 듯 후하후하 불어가며 먹는 재미가 있다. 시간이 더더욱 흘러 11월, 12월이 지나면 올해 아이들도 중학교로 올려보낸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변하고 날씨가 바뀌는 것처럼 아이들도 변했다. 아니, 자랐다고 말해야 더 맞는걸까?
우리반 아이들의 성장의 징후 첫번째, 화장품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에도 민낯으로 수수하게 찍어 내 마음을 따뜻하게도 조금 걱정스럽게도 만들었던 아이들이었다. 10월에 마지막주에 들어서니 틴트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도 생겼다. 자리에 앉아있다보면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온갖 화장품 제품명이 흘러나온다. 쉐딩이 어떻고, 비비는 뭐가 좋고, 틴트는 이게 색이 예쁘고 하는 것들. 다른 학교 여자아이들은 이미 6학년 1학기 초부터 풀 메이크업을 마치고 학교에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귀엽기만 하다. 다만 학급 분위기를 지나치게 흐리면 안되기 때문에 이야기가 들리면 "선생님이 보면 뺏어야 하는데~" 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재빠르게 화장품 파우치를 가방 속으로 숨긴다. 학기 초부터 한 차례 말을 한 후에도 문제가 되는 물건을 가지고 놀거나 선생님 눈 앞에 보이면 뺏긴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을 통해서 이미 학습한 결과다.
성장의 징후 둘째, 나의 말에 말대꾸 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학기 초,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알겠다고 대답하던 아이들이 바뀌었다. 수업 중간에 놀이 방법을 설명하는 내게 그건 아닌데요. 라고 말을 하는 녀석도 나오고 수학 단원평가 오답노트를 하라는 내 말에 왜요? 왜 해야 해요?를 반복하는 금쪽이도 출현하고 있다. 인간이 성장하고 뇌가 발달하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설명하는 상급자에게 반발심이 생기는 건 내 입장으로선 애석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주변 이들을 시험한다. 권력 관계에 예민한 남자아이들에게서 이러한 양상은 더 잦다. 선생님의 말에 예의없는 대답 (네에~ 느에~ 예에? 뭐라구요? 를 반복)을 해놓고 이를 지적하는 선생님께 대항하듯 다 들리게 나 그런 말 안했는데!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라고 물어보는 짓. 선생님의 정당한 지시에 왜요?를 30번 정도 반복하는 일 모두 시험의 일종이다. 선생님께 버릇없는 행동을 해보고 어떠한 반응이 나오냐에 따라 행동은 더욱 방만해지기도, 아니면 뜨겁게 데어 선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 이 선 넘으면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 를 알려주는 나의 방식은 1단계 생활기록부 누가기록 남기기, 2단계 부모님께 연락하기, 3단계(최후의 수단) 교사 지시에 대한 불응과 불손한 태도로 선도위원회 열기 등이 있다. 정말 대쪽같은 아이가 아닌 이상 2단계까지 가기 전에 다 굴복한다. 모두에게 약점은 한가지씩 있다. 아이가 머리가 있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더욱 좋다. 그렇다면 1단계에 가기도 전에 끝난다. 생활기록부는 평생 가는 기록이고 한번 적히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누가기록에 부정적인 내용이 적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라도 무서워하는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매일 돌아가야한다면 네가 한 버릇없는 일들을 모두 기록한 종이를 찍어 부모님께 보내겠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고, 집에도 무서운 부모님이 없다면? 아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위치에 있다.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학교 오라고 하자."
"네~ 그러세요~"
"너 고쳐지지가 않는구나. 선도위원회 열자. 징계 내릴거야."
"네~ 열어요."
답이 없다. 우리반 금쪽이... 그 태평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혈압이 치솟았다. 금쪽이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무서운 보호자도 없다. 가게일로 바쁜 부모님은 그의 형제자매에게 그를 맡겨놓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로서 응당히 받아야할 애정도, 관심도 부족한 금쪽이는 불만 에너지를 학교에 와서 해소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금쪽이가 반항심에 폭주하는 날이 있다. 나의 지시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왜요? 제가 이걸 왜 해야 해요?"를 듣고 있자면 요즘 MZ세대들이 직장인이 되어 상사의 업무 지시에 "제가요? 이걸요? 왜요?" 한다던데 그 상사는 고충이 얼마나 심할까 싶다. 그래도 말 안듣는 후배 직장인은 거리를 멀리하거나 안좋은 근무태도로 잘리기라도 하지 의무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반 학생을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날마다 부지런히 교무실 앞까지 데려갔다. 안되겠다! 교감선생님께 가자. 하고 아이를 데려가면 보통 금쪽이의 폭주하고 내 뚜껑이 열리는 시기가 4교시인데 이 시간이 교무실 점심시간과 겹친다. 불 꺼져있는 교무실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며 금쪽이를 어루고 달랜다. "우리 앞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데 네 태도로는 우리가 잘 지낼 수 없다.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잘 해보자. 너 정말 엄마가 학교에 와도 괜찮아?" 지금 생각해보면 말을 잘 들어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말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보통 금쪽이도 정신을 차리고 좀 조용해진다. 부글부글 분노로 끓는 속은 퇴근 후 대니가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고 잠 한 숨 자면 보통 풀린다. 오래가는 교직의 키포인트는 분노 해소에 있다. 내 안에 생기는 홧병을 잘 어루고 달래야 학교일도 오래 할 수 있다. 이건 모든 직장인의 공통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