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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Aug 26. 2024

여학생 관찰기 - 나의 열성팬, 은이

 

 우리반에는 나를 무척 좋아하는 여학생이 하나 있다. 올해 6학년을 맡으며 소박하게나마 가진 기대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서 관심을 '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작년 4학년 아이들을 맡으며 아이들의 많은 질문과 관심 속에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투명인간이 되고 싶기도 했다. 교실 안에는 너희들 또래가 많잖아. 꼭 선생님에게 네 인형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 물어봐야겠니...? 그래도 아이들에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그저 끄덕끄덕 자동차 대쉬보드에 올라간 태양열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4학년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나를 좋아해줬지만, 6학년은 안 그러지 않을까? 좀 더 쿨하고 그래서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개학한 첫 주부터 그 기대는 사라져버렸다. 우리반에, 나를 너무 좋아해주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은이는 내가 보기엔 참 밝은 성격이었다. 붙임성도 좋아서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내게 말을 잘 걸어왔다. 래포를 형성해야 하는 첫 주에 내게 잘 다가와주는 밝은 학생은 어색한 교실의 햇살 같은 존재라 나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뭔가 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느낀 은이는 내가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로 따라왔다. 쉬는 시간 학년실에 들어가면 학년실 창문으로 나를 쳐다봤다.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급식을 다 먹길 기다리고 나와 함께 교실로 올라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의아했다. 4학년 여자아이들도 나에게 이렇게 해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이의 행동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단짝 영선이를 떠올리게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들의 교우관계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절대적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주로 한 명의 단짝을 만들어 그 아이와 어울렸다. 조용하면서도(항상 시끄러우면 에너지를 빨린다.) 가끔씩 발칙한 아이들이 나의 주 취향이었다. 몇 일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은이가 나를 자신의 베프로 여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차! 은이야, 지금은 선생님과 어울릴 때가 아니라 1년을 같이 보내야 할 친구들과 더 친해져야 할 시기야. 


 나는 은이가 친해질만한 교실 속 여자아이들을 떠올렸다. 다행히도 은이와 어울릴만한 여자아이들이 몇 떠올랐다. 다들 조용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씩 발랄해지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어울릴 타입의 친구들이 같은 반에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아주 중요한 행운이다. 나는 은이가 친구를 사귀기를 바랬기에 그 친구들에게 계속 밀었다. 


"은이야~ 혜진이랑 이야기 해봤어? 혜진이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던데?"

"은이야~ 수진이 배드민턴 치러가던데 너도 따라가봐."

"은이야~ 점심시간에 애들 보드게임 하더라. 너도 같이 해봐~"


내 모든 제의는 철회되었다. 은이는 내 제의를 듣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은이가 듣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6학년 여학생들의 에고는 연약한 듯 하면서도 단단하고 은이는 그 중에서도 더 단단한 에고를 가진 것 같았다. 우리반의 실무사님은 아이들이 2학년이던 시절부터 우리 학교에서 근무를 해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셨다. 어느날 실무사님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은이가 참 밝고 괜찮은데 왜 친구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실무사님은 은이는 저학년때부터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참 밝고 어른들에게 붙임성도 좋은데 왜인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처음은 은이가 끊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 아이들이 먼저 끊어낸 것이었구나.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은 큰 상처가 된다. 그런 상처를 한 번 받으면 다른 이와 가까워 지고 싶어도 다시 통증을 느끼게 될까 두려움이 더 커져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은이는 쉬는 시간에 나와 수다를 떨고 엎드려서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자는 은이를 보면 나는 은이를 깨워 괜히 말을 건다. 어제는 몇시에 잠에 들었는지, 왜 이렇게 피곤해하는지를 묻는다. 은이는 어제 잠을 늦게 잤다고, 혹은 눈을 비볐다고 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수다를 떨 것이다. 은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나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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