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레디 Aug 25. 2024

2학기 개학일을 맞은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주세요.

 짧고 행복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어느새 2학기 개학일이 다가와버렸다. 개학을 앞둔 나의 마음은 심숭생숭 그 자체였다. 수학여행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두 차례의 친구 방문에 응대하고 집을 내어주고, 약속을 몇 번 나가니 끝나버린 내 방학! 장장 한 달에 달했던 내 방학이 도대체 다 어디 갔냐고 땅이라도 파보고 싶은 시정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무정하다. 무정하다 느끼는 것도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시계은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할 뿐이다. 1초, 1초, 시간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여름방학 동안 무너진 취침패턴으로 새벽 2시 취침 오후 2시 기상을 반복했는데 개학식이 되자마자 땡 하고 생체 시계를 바르게 돌려놔야 한다. 새로 옮긴 학교가 부쩍 가까워져 8시에만 기상해도 출근시간을 맞출 수 있다. 퇴근해도 5분이면 집안에 쏙 들어온다. 교통체증 없는 출퇴근길은 참 아름답다. 역시 집은 직주근접이 최고다. 8시에 일어나 세수, 양치를 하고 간단한 화장을 한 뒤 옷을 걸쳐 입는다. 몽롱한 뇌를 깨어줄 캡슐커피는 꼭 텀블러에 한 잔을 타가야 한다. 캡슐커피에 익숙해진 내 입은 가루커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텀블러를 들고 가방을 둘러매고 야옹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엄마 일 다녀올게! 프레디, 메리 사이좋게 있어~”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뽈뽈뽈 지나 아침 등하굣길 도우미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횡단보도를 3번 건너면 학교가 있다. 이 일을 90번 정도 반복하면 2024학년도 겨울방학이 온다. 내 하루하루는 모두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시계의 초침처럼 어느정도 연속성을 갖는다. 내 인생을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전 지향적인 나에겐 큰 메리트가 되어준다. 얼마나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2학기를 시작한 지 2일째, 요즘 내가 가진 고민은 아이들에게 기선제압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반은 6학년, 13살 아이들 20명으로 이뤄져 있다. 여자 12명, 남자 8명인데 우리 학교의 농구부, 방송부는 다 우리반이다. 6학년의 활발한 녀석들은 다 우리반에 속해있다. 개학하는 첫 날, 너무 시끄러워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여름방학 동안 먼지가 쌓였으니 청소를 하자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빗자루, 청소기, 밀대, 스프레이 등을 들고 열심히 청소에 임한다. 열심히 청소를 해주는 건 분명 고마운데, 정말 너무너무 시끄럽다. 어느 녀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물을 뿌리고 다른 녀석은 그걸 밀대로 열심히 닦으며 우워우워 소리를 내지른다. 내 글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 소란스러움과 시끄러움에 아이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청소하라는 나의 말에 열심히 청소하는 것 뿐인데 그걸 타박하기도 미안하다. 아이들을 타박하기 미안해했던게 문제였을까?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법륜 스님의 강의를 너무 열심히 들었을까? 패턴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내가 무언가를 지시함. -> 그 일을 수행하는데 몇몇 아이들은 너무나 시끄럽게 굼. -> 내가 시킨 것을 하고 있는데 지적을 해도 되는가? 또 이것이 정말 지적을 해야 할 일인가? 아이들은 원래 시끄럽기 마련이 아닌가 고민 시작 -> 지적을 안하거나 지적의 타이밍 놓침. ->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강화


 2년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다. 사실 고학년을 맞으면 기싸움은 매일매일 해야하는 숙명과 다름이 없다. 2년전에는 학교에서 가장 기센 아이와 매일매일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그 결과 반은 좀 조용해지기는 했다. 지금도 제일 기센 녀석이 우리반에 있는데, 살짝 귀엽기도 하다는게 문제다. 아예 기싸움에서 이겨야 할 녀석으로 지정해야 나는 강력하게 대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은 살짝 귀여워서 강력하게 뭐라고 하질 못하겠다. 참… 역시 먹고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 여름방학에 세운 전략으로는 이 녀석을 더욱 사랑해서 사이좋은 우리반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1학기때도 이 친구로 내가 살짝 고통을 받았다는 것은 사랑하기 쉽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인데 역시 내가 순진했다. 사랑으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보다 복식호흡 발성으로 기싸움에서 이기는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한 달동안 많이 쉬었다! 이제 일할 때다. 2학기 개학일을 맞은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이전 27화 여름의 즐거움, 밭일과 수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