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행복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어느새 2학기 개학일이 다가와버렸다. 개학을 앞둔 나의 마음은 심숭생숭 그 자체였다. 수학여행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두 차례의 친구 방문에 응대하고 집을 내어주고, 약속을 몇 번 나가니 끝나버린 내 방학! 장장 한 달에 달했던 내 방학이 도대체 다 어디 갔냐고 땅이라도 파보고 싶은 시정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무정하다. 무정하다 느끼는 것도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시계은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할 뿐이다. 1초, 1초, 시간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여름방학 동안 무너진 취침패턴으로 새벽 2시 취침 오후 2시 기상을 반복했는데 개학식이 되자마자 땡 하고 생체 시계를 바르게 돌려놔야 한다. 새로 옮긴 학교가 부쩍 가까워져 8시에만 기상해도 출근시간을 맞출 수 있다. 퇴근해도 5분이면 집안에 쏙 들어온다. 교통체증 없는 출퇴근길은 참 아름답다. 역시 집은 직주근접이 최고다. 8시에 일어나 세수, 양치를 하고 간단한 화장을 한 뒤 옷을 걸쳐 입는다. 몽롱한 뇌를 깨어줄 캡슐커피는 꼭 텀블러에 한 잔을 타가야 한다. 캡슐커피에 익숙해진 내 입은 가루커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텀블러를 들고 가방을 둘러매고 야옹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엄마 일 다녀올게! 프레디, 메리 사이좋게 있어~”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뽈뽈뽈 지나 아침 등하굣길 도우미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횡단보도를 3번 건너면 학교가 있다. 이 일을 90번 정도 반복하면 2024학년도 겨울방학이 온다. 내 하루하루는 모두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시계의 초침처럼 어느정도 연속성을 갖는다. 내 인생을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전 지향적인 나에겐 큰 메리트가 되어준다. 얼마나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2학기를 시작한 지 2일째, 요즘 내가 가진 고민은 아이들에게 기선제압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반은 6학년, 13살 아이들 20명으로 이뤄져 있다. 여자 12명, 남자 8명인데 우리 학교의 농구부, 방송부는 다 우리반이다. 6학년의 활발한 녀석들은 다 우리반에 속해있다. 개학하는 첫 날, 너무 시끄러워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여름방학 동안 먼지가 쌓였으니 청소를 하자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빗자루, 청소기, 밀대, 스프레이 등을 들고 열심히 청소에 임한다. 열심히 청소를 해주는 건 분명 고마운데, 정말 너무너무 시끄럽다. 어느 녀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물을 뿌리고 다른 녀석은 그걸 밀대로 열심히 닦으며 우워우워 소리를 내지른다. 내 글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 소란스러움과 시끄러움에 아이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청소하라는 나의 말에 열심히 청소하는 것 뿐인데 그걸 타박하기도 미안하다. 아이들을 타박하기 미안해했던게 문제였을까?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법륜 스님의 강의를 너무 열심히 들었을까? 패턴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내가 무언가를 지시함. -> 그 일을 수행하는데 몇몇 아이들은 너무나 시끄럽게 굼. -> 내가 시킨 것을 하고 있는데 지적을 해도 되는가? 또 이것이 정말 지적을 해야 할 일인가? 아이들은 원래 시끄럽기 마련이 아닌가 고민 시작 -> 지적을 안하거나 지적의 타이밍 놓침. ->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강화
2년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다. 사실 고학년을 맞으면 기싸움은 매일매일 해야하는 숙명과 다름이 없다. 2년전에는 학교에서 가장 기센 아이와 매일매일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그 결과 반은 좀 조용해지기는 했다. 지금도 제일 기센 녀석이 우리반에 있는데, 살짝 귀엽기도 하다는게 문제다. 아예 기싸움에서 이겨야 할 녀석으로 지정해야 나는 강력하게 대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은 살짝 귀여워서 강력하게 뭐라고 하질 못하겠다. 참… 역시 먹고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 여름방학에 세운 전략으로는 이 녀석을 더욱 사랑해서 사이좋은 우리반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1학기때도 이 친구로 내가 살짝 고통을 받았다는 것은 사랑하기 쉽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인데 역시 내가 순진했다. 사랑으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보다 복식호흡 발성으로 기싸움에서 이기는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한 달동안 많이 쉬었다! 이제 일할 때다. 2학기 개학일을 맞은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고개를 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