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교직생활에 대한 첫 기록
교감님께 딜을 쳤던 나의 제안이 이뤄졌다. 5학년 부장을 맡게 되었다. 기능부장은 덤으로 따라왔다. 어쩔 수 없다.
올해를 함께 할 우리 반 아이들 명단을 살펴봤다. 학급 명단에는 5학년 아이들 중 나를 가장 염려하게 만들었던 아기상어 소년이 있었다.
올해의 십자가는 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직에 있으며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만나보니 나는 이 아이가 나와 맞을지 안 맞을지 대충 느낌이 온다.
문제가 될지 안 될지도 조금 느낌이 온다. 남학생들과의 관계 순항 정도를 표로 만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나와의 우호적인 관계 여부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는 사춘기 남아와 관계와 틀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명확한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이고, 독서를 좋아하며 나름 조용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중 착하고 예의 바른 학생에게는 매우 유해진다. 분홍색의 데스크 용품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내가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 출근하면 그 물건이 분홍색인지 아닌지를 먼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의 체육을 맡아주는 체육교담 선생님께서 슬쩍 일러주기를 아이들이 나를 뒤에서 핑크공주라고 부른단다. 내가 중학생 시절, 나에게 참 잘해주셨던 김미자 선생님의 성함을 개념 없이 미자, 미자하고 불렀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간은 대게 똑같다.
이런 나의 특징이 사춘기 고학년 남아에게는 약간 우습고 만만해 보이는 듯하다. 내가 만난 미친 6학년 학생 중에서는 자기가 조금만 더 크면 진짜 남자가 될 거라며, 자기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다.(참고로 나는 미인이 아니다.) 운동장 산책을 할 때 우리 반도 아닌 녀석이 따라붙기도 했다. 선생님과 산책을 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지를 내게 물어보길래 진지하게 혹시 마음이 많이 아픈지를 되려 물어줬다. 주변 선생님들께 고충 상담을 하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즐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웃기는 일이다. 실제로 몇 년 더 나이가 드니 그런 일은 생겨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나이의 두 배를 넘어선 때가 됐으니, 나는 아이들 눈에도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아무튼, 아기상어 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다.
아기상어 소년은 작년 내 귀에도 종종 소문이 들어왔던 학생이었다. 그는 성질이 나면 책상을 엎었고, 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박는다고 했다. 이때 교사가 주위에 있든 말든 그건 소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상어소년은 자신의 널뛰기하는 감정에 따라 폭주했다. 소년을 말리다 선생님이 얻어맞는 일도 있었고 내 동학년 선생님은 비 오는 날 학교. 본관에서 우산을 접다 우산이 접히지 않자 과감하게 “씨발! ” 소리를 지르는 소년을 말리다 진이 다 빠져 출근했다. 아기상어 소년은 우리 학년의 거물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희소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기상어 소년이 담임 폭행 이후 adhd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약이 다행히 잘 맞아 소년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도 있었다. 그에게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기를 기도하며 나는 새로운 3월을 시작했다.
아기상어 소년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실 그는 좋은 학생이었다. 소문만 들었을 때와 달리, 소년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1. 머리가 좋다. 내 짧은 교직 중 만난 adhd 소년은 총 2명이었다. 경미한 증상 말고 좀 심각했단 소년들. 그리고 그 둘의 특징은 모두 머리가 좋다는 사실이었다. 머리가 좋아 내 수업시간 집중도 있게 학습하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빠르게 핑핑 돌아가는 게 보인다는 말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학생들을 좋아한다. adhd를 앓는 아이들은 보통 한 해간 나의 vip 학생들이 되므로 이 아이들에게는 신중한 칭찬을 적절히 던져가며 친밀관계를 잘 형성해야 한다.
2. 타인을 도와주려 한다. 상어소년은 수업시간 아직 이해를 못 하거나 종이접기를 잘 못하는 친구를 보면 도와주려 했다. 또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3. 나의 말을 잘 듣는다. 상어소년은 다행히 사춘기 호르몬이 아직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소년은 학급규칙을 말하는 내 말을 거부하지 않고 문제상황 발생 시 잘못을 지적하는 내 말을 잘 받아들였다. 아마 소년에게 적절하게 제공한 나의 칭찬과 격려의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트러블이 예상되는 아이를 대할 때는 절대 그 아이와 틀어지면 안 된다. 한 해간 교사를 괴롭히는 십자가가 된다. 이미 심하게 틀어졌고 학생의 지속적인 반항으로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고 있다면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고 정면으로 맞서라. 숙이기만 하는 건 그 아이를 다음 해에 맡게 될 담임교사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소년을 보며 마음을 놓아가고 있을 때 일이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예체능과 관련된 이슈였다.
상어소년은 리코더를 어려워했다. 배드민턴을 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소년의 이해력의 발달정도와 달리 소년의 조작능력은 다소 떨어졌다. 리코더 연주가 어려우면 차분히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년은 자신이 무언가를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음악시간 리코더를 알려주고 연습시간을 준 때였다.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상어 울어요!”
놀라서 살펴보니 상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리코더를 연주하고 있었다. 리코더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리코더로 책상을 반복적으로 후려쳤다.
쾅! 쾅! 쾅!
나는 너무 당황스러왔다. 국어 수업시간, 리코더 들고 교실 안을 빙글빙글 달리던 학생은 봤어도 내가 있는 앞에서 리코더로 책상을 후려치는 학생은 처음 봤다.
당황한 나는 옆으로 다가가 물어봤다.
상어야, 왜 그래? 왜 울어?
리코더가 잘 안 되잖아요!
상어소년이 억울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누가 너한테 리코더 잘하라고 했어? 왜 우는 거야..?
나는 당혹스러웠다. 인간은 모든 걸 잘할 수 없다. 자신이 어떠한 분야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조용히 연습을 하던지, 아니면 쿨하게 포기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상어소년은 연습을 하지 않고 울면서 화풀이하는 걸 택했다.
잘 안된다니까요! 리코더가 잘 안 돼요!
상어야 일단 울지 말고, 계속 울면 더 못 해. 연습을 해야 조금이라도 늘지. 계속 울 거야? 아니면 연습할 거야?
나의 말에 눈물을 흘리던 상어소년은 눈물을 닦았다. 혼자서는 잘 못하겠다는 소년의 말에 그의 옆에 앉아 리코더 운지를 1대 1로 지도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음악시간에 리코더 하기가 무섭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주문한 칼림바가 왔는데 나눠주기도 무섭다. 그래도 다음 주에는 나눠줘야겠다.
다음 사건은 아이들을 체육관으로 보낸 체육 시간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쳬육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상어소년이 울고 있었다. 책상에 엎드려 우는 소년을 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드민턴을 치던 중 배드민턴 리시브가 잘 안돼 그때부터 화를 내기 시작했고 소리 지르고 배드민턴채로 자기 머리를 때리는 상어소년을 말리다 체육선생님께서 배드민턴 하지 말고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하자 왜 배드민턴을 못하게 하냐며 더 큰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체육선생님께 혼나자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상어소년은 자기가 뭘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것 같았다. 점심시간 만난 체육선생님은 혼이 나간 모습이었다. 다음에도 상어가 폭발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나를 호출하라고 했다.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선생님은 나머지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고 말씀드리면서 말이다. 2번 정도 상어를 달래러 체육관으로 내려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가 못하는 분야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일은 정~말 많을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어의 머릿속으로 넣어줘야 한다.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잘하게 만들 것인지 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울면서 화내는 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올 한 해가 끝나기 전까지 상어 소년이 깊이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