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Feb 03. 2024

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①

프레스티지(Prestige, 2006)

 2007년 여름에 군대를 갔다. 친구들은 보통 2학년 마치고 06 ~ 07년 겨울에 군대를 갔고, 나도 원래는 그렇게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영장이 충북에 있는 후방 부대로 나왔고, 불필요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입대 날짜를 다시 받았고, 보통 그러면 거의 최전방 배치가 된다. 그러다 보니 3학년 1학기까지 친구 없이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 시기에는 평일에는 후배들하고 PC방을 갔고, 주말에는 집에서 영화만 봤던 것 같다. 덕분에 광란의 대학생활을 하면서 놓쳤던 영화들을 많이 챙겨보게 됐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대망의 입대 전 마지막 영화로 봤던 것이 바로 프레스티지(Prestige, 2006)였다.


 프레스티지를 보게 된 이유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주연 배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2000)머시니스트(Machinist, 2004) 덕분에,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입대하기 전날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하다가, 크리스찬 베일이 가장 최근에 찍었던 영화가 있길래 주저 없이 선택을 했고, 덕분에 굉장히 심란한 기분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일단 눈이 즐겁다. 지금 다시 모으려면 너무 비싼,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 거기에 스칼렛 요한슨과 레베카 홀, 앤디 서키스, 마이클 케인에 심지어 위대한 가수인 데이빗 보위까지 나온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은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되고, 휴 잭맨은 엑스맨, 스칼렛 요한슨은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 레베카 홀은 아이언맨 3편의 마야, 앤디 서키스는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자 혹성탈출의 시저이고, 블랙팬서의 율리시스 클로이기도 하다. 마이클 케인 경은 설명하는 게 필요 없는 배우다. 이런 유수의 배우들이 190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연기하다 보니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많은데, 이 영화의 주제가 마술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시각적 화려함은, 마술 같은 영화 연출에 있어 눈속임을 위한 화려한 볼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마이클 케인 경과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휴 잭맨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이 당대 최고의 마술사의 자리를 놓고 대결하면서 점점 파멸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사실 스토리 자체를 설명할 수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중 강렬한 반전을 가진 유일무이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메멘토나 테넷 같은 영화는 시간 배열을 섞어놓으면서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거나 교차하는 편집을 통해 반전 아닌 반전을 만들어내는 영화이지만, 프레스티지는 그 스토리 자체에 강렬한 반전이 숨어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망설였던 것이,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세세한 설명을 피하게 되면, 정작 할 말이 없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꼭 소개하고 싶었기에, 놀란 감독의 작품 소개 글을 두개로 나눠서 하더라도 이건 꼭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니콜라 테슬라' 역의 데이빗 보위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입대하는 날까지 착잡함을 안고 가야 했던 것은, 최고의 마술사라는 자리를 놓고 하는 두 남자의 경쟁이 꼭 그렇게까지 서로를 파멸시키는 지점까지 가야만 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대결하면서 서로 파멸해 가는 스토리는 꽤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런 진부한 이야기로도 입대 전의 불안감을 날려버릴 정도의 심란함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그리고 두 주연 배우의 연기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꽤 피로를 유발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놀란 감독의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괜찮을 수도 있다. 놀란 감독은 세세한 디테일까지도 전체 극의 방향과 이야기에 맞게끔 장치하기에, 이 영화는 몇 번을 다시 봐도 놀랄 만큼 세부적인 연기와 구성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만큼 평범하게 지나가는 장면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시간 교차적 편집, 그리고 영화 자체를 한 편의 마술을 보듯이 구성하면서, 마술의 트릭을 발견해 내려는 관객과의 기싸움이 러닝타임 내내 유지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충분한 컨디션 관리가 된 상황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두고 집중해서 보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술의 결과가 공개되는 장면을 보면서 어? 하고 끝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집중해서 본다면, 이 영화는 몇 번을 다시 봐도 강렬한 긴장감과 요동치는 감정을 선사하는 명작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가상의 이야기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 극에 다다른 경쟁에 임하는 마음에 심란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최고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영화를 본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더 얘기하기 어려운 영화라, 공식 트레일러만 링크하고 글을 마친다. 이 다음 글은 좀 더 자세한 소개를 할 수 있는 영화이니, 그 때 글을 못 쓴 한 풀이를 해야겠다,


https://youtu.be/ELq7V8vkekI?si=1SnPaHHBg7YPxNE7






이전 02화 평범 코스프레에 실패한 천재, 에드가 라이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