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Jan 31. 2024

평범 코스프레에 실패한 천재, 에드가 라이트

베이비 드라이버와 이전 작품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영화계에서 참신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감독 중 하나이다. 특히 코미디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나는 감독의 생김새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 생긴 감독의 유머 연출이라니, 대충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2017년 개봉한 [베이비 드라이버]는 상업적 성공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대표작일 수 있겠으나,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감각적인 연출, 풍자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기법 등을 아낌없이 보여준 영화는 아니다. 물론 그의 매니악한 연출을 어느 정도 배제하고 적정 수준에서 타협한 것이 상업적 성공을 불러왔다는 아이러니한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베이비 드라이버]는 정말 훌륭한 영화다.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는 음악이 가득하다. 음악이 영화를 이끄는지, 영화에 맞춰 음악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20년 전, 에드가 라이트를 처음 접했던 작품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였는데, 여기서 좀비를 때려잡는데 갑자기 카세트 플레이어가 작동되면서 깔리는 Queen의 Don't stop me now는 어이없기도 하면서, 마치 노래대로 배우들이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명장면이었다. 어릴 때는 장르적 다양성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영화를 무조건 진지하게 바라봤기에 굉장히 저질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였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이렇게 유쾌한 영화가 없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Queen의 Don't stop me now에 맞춰 좀비 패는 씬]

https://youtu.be/W4 tVH7 BPb-Q? si=Nr4 PvAniR559 mLnW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음악을 대놓고 깔기 위한 장치로, 주인공이 어릴 때 사고로 인해 이명증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는 설정을 잡는다. 덕분에 감독은 말 그대로 음악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장면을 연출하고, 그 박자와 드럼 킥, 베이스에 딱 딱 맞는 카체이싱 액션은 관객에게 엄청난 즐거움을 준다. 일반적인 카체이싱 영화가 슈퍼카 또는 아메리칸 머슬카를 등장시키고, 굉장한 속도와 굉음을 통해 사람들을 흥분시키려 한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는 평범한 차로 일상적인 도로 환경을 배경으로 해도, 음악이 가미되면 색다른 쾌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비 드라이버, 오프닝 씬]

https://youtu.be/7ARFyrM6gVs?si=GO4MdflvfshO4FVp



 [베이비 드라이버]라는 제목 자체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카카오웹툰의 '부기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이명으로 통해 음악을 맘대로 넣을 수 있는 설정을 한 것에서, 음악 덕후인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결국 일반인 코스프레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오프닝 씬에서의 범죄 수익을 나누는 약 20초 간의 장면을 보면, 이 감독이 음악 덕후인지 느껴진다.


[베이비 드라이버, 범죄 수익 분배 씬]

https://youtu.be/ShIwdMdWOW8?si=hTjxCiGkHMoNeQPY



 [베이비 드라이버]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대단하지 않은 도시 범죄물에 감각적인 카체이싱을 넣은 영화다. 이 점이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기존에 추구하던 방향과 약간 다르다는 것인데, 그의 이전작들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의 경우, 사회 풍자적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저임금 단순노동자에 대한 시선, Blue monday를 맞이하는 우리의 일상이 좀비랑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유려한 연출을 보여준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타이틀 씬]

https://youtu.be/YtUafnJeIAU?si=aFNTSLZJHWsNJ5Hm



[뜨거운 녀석들]에서는 가장 능력 있는 경찰인 주인공이 그로 인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좌천되는 현상, 공공선이라는 미명 하에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영국의 보수성, '약자인 척하는 악당'과 그에 맞서는 '강자 또는 악으로 인식되는 약자'들의 싸움까지.


[뜨거운 녀석들, 총격전 씬 - 사회적 약자인 것 같던 노인들이 알고 보면 중무장한 악당인 경우]

https://youtu.be/sQ3oHyUDNDI?si=-4cossQTdpaxyW0W



기존의 클리셰와 각종 영화를 오마주 하여 살짝만 비트는 연출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감독이었고,  그만큼 영화는 매니악해지는 단점이 있어서인지,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이전작들은 상업적 성공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이후 감독은 마블 스튜디오의 '앤트맨'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참여했지만 결국 스튜디오와의 의견 차이로 하차하면서, 결과적으로 꽤 오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영화 [앤트맨]은 에드가 라이트의 각본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엔딩 크레딧에도 에드가 라이트의 이름을 올리게 됐다.


 장기간의 공백으로 에드가 라이트의 재능이 잊혀 가던 즈음, 2017년 [베이비 드라이버]로 돌아온 감독은 자신의 재능이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대중성과 타협하여 훨씬 더 성공적인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으며, 감독 커리어 하이를 찍게 된 것이다.




 이 감독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베이비 드라이버]를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더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은 앞서 이야기한 두 작품이지만, 조금은 더 대중성을 가진 작품으로 먼저 접하는 것이 장르적 거부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드가 라이트의 감각적인 연출과, 잘 다듬어진 상업영화로서의 세련됨을 먼저 접하고, 이후 감독의 이전작들을 만나볼 것을 추천한다. 코르네토 3부작이라 불리는 3개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 나면, 왜 에드가 라이트가 감독들의 연예인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 감독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을 지켜보자.


코르네토 3부작, 왼쪽부터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 나는 날



이전 01화 루소 형제와 요즘 액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