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스스로를 반성하며

사람에게 지쳐 시작한 글이 다시 사람을 의식하게 만들다

by 풍운의 되새김질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숨이 차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미워해서도 아니고,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반복되는 오해와 기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었던 마음들이 번번이 어긋나면서 나는 조금씩 닳아 있었다. 그 닳음이 쌓이다 보니, 사람에게 지쳤다는 말을 차마 쉽게 꺼내지 못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고갈되어 있었다.

험난하다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분명 험난했다. 관계는 늘 양면적이었다. 따뜻함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민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 갔다. 기대를 낮추고, 거리를 두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평가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인생을 아카이빙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감정은 금세 휘발된다. 글로 남기지 않으면 내 삶이 나조차 모르게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기록을 통해 나를 붙들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담백했다. 누가 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글은 타인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독백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이 공간에도 ‘라이킷’이 있고, ‘팔로워’가 있으며, 숫자로 환산되는 관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숫자는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올리자 반응이 조금씩 늘어났다. 누군가는 공감의 표시를 남겼고, 누군가는 조용히 구독 버튼을 눌렀다. 낯선 이름들이 내 글 아래에 흔적을 남겼다. 솔직히 말하면 그 변화가 기분 좋았다. 나의 사적인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감각은 은근한 위안이 되었다. 내가 겪은 혼란과 상처가 완전히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관심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그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전에 ‘이 글이 얼마나 반응을 얻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진솔함보다 반응을, 성찰보다 공감을 계산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독백을 하던 사람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부터 글쓰기는 순수한 행위가 아니게 되었다. 좋아요의 숫자가 적으면 괜히 서운했고, 기대만큼 반응이 없으면 글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침묵이 나에 대한 부정처럼 다가왔다. 글을 쓰는 이유가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점점 흐려졌다. 나는 다시 사람을 의식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잠시 브런치를 떠났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부담과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것은 어쩌면 도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마운 관심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채 스스로 밀어낸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표현을 쓴다. 사소한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누군가의 애정을 부담으로 받아들이며, 결국 스스로 벽을 세워 버린 마음. 누군가를 곁에 둘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실은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사람에게 지쳐 글을 썼지만, 글을 통해 다시 사람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나는 혼자이고 싶었지만, 동시에 연결되고 싶어 했다. 완전히 단절된 채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연결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관심은 시험지가 아니다. 좋아요의 숫자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팔로워의 수가 내 삶의 밀도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누군가가 잠시 머물렀다는 흔적일 뿐이다. 그 흔적을 감사히 여기되, 그것에 종속되지는 않으려 한다.

글은 결국 나를 향한 질문이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반응에 흔들리는지, 왜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지, 왜 인정받고 싶은지 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다시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

험난한 시간을 겪은 덕분에 나는 조금은 단단해졌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적어도 내 마음의 좁음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변화라면 변화이다.

앞으로의 글은 조금 더 담담해질 것이다. 타인의 반응을 계산하기보다, 나의 진실을 확인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관심이 오면 감사히 받고, 오지 않으면 그 또한 흘려보내려 한다.

이것 또한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못난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배우는 중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람에게 지쳐 시작한 글이 다시 사람을 의식하게 만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더 또렷하게 보게 되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고, 그저 기록하려 한다.

본질은 단순하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