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말이 멀어질 때

밀라노의 밤보다 생업이 앞서는 시대의 마음

by 풍운의 되새김질

밀라노의 밤이 화면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빙판 위를 가르는 선수들의 몸짓은 여전히 빠르고, 환호성은 여전히 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어릴 때는 올림픽이든 아시안게임이든,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마치 우리 집안일처럼 여겼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선수의 표정 하나에 숨을 멈추고, 점수 하나에 소리를 질렀다. 이기면 우리가 이긴 것 같았고, 지면 우리가 진 것 같았다. 그들의 눈물은 내 눈물이었고, 그들의 환호는 우리 동네의 환호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국가대표’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애국가를 부른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낯선 나라의 경기장 한가운데 서 있는 선수의 등번호가 곧 내 번호처럼 느껴졌다. 화면 속 국기가 천천히 올라갈 때면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나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훑어보게 되었다. 금메달을 땄다는 속보가 떠도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내 일로 돌아간다. 우승 인터뷰가 이어져도 끝까지 보지 않는다. 그들이 잘했다고 해서 내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아쉽게 패했다고 해서 내 하루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먹고 사는 일이 생각보다 바쁘고 무겁다. 생업은 늘 우선순위의 가장 위에 있다. 밀린 업무와 해결해야 할 문제, 당장 마주해야 할 현실이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니 먼 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에 마음을 오래 둘 여유가 점점 사라진다. 응원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공동체라는 단어는 점점 추상적인 개념이 된다.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예전처럼 열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연결감일지도 모른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 실패를 함께 안타까워할 수 있는 여유. 그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서운하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지키느라 바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생존이 우선이 된 시대에서 공동의 환호는 뒤로 밀려나기 쉽다. 예전에는 “우리”라는 말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나”라는 말이 앞선다. 나의 커리어와 나의 생활, 나의 안정이 먼저이다. 틀린 방향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선수들은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훈련한다. 차가운 트랙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메달이라는 형태로 드러날 때 한 나라의 이름이 함께 불린다. 예전의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함께 고개를 들었다. 지금의 나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화면을 끈다. 마음이 식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아끼는 법을 배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공동체 의식이 퇴색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삶의 표면에서 조금 멀어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성취를 기사로 읽고, 짧게나마 박수를 보낸다.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을 뿐 완전히 무관심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열정이 생활의 무게에 눌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느끼던 그 뜨거움은 단지 승패 때문이 아니라, 함께라는 감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집에서 같은 장면을 보며 동시에 숨을 죽이고, 동시에 환호하던 그 시간. 그 감각이 줄어들었다면 문제는 올림픽이 아니라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밀라노의 경기장은 여전히 눈부시고, 선수들은 여전히 최선을 다한다. 화면을 끄고 나서도 그 장면은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예전만큼 열광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외면하지도 못한다. 아마도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내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울고 함께 웃던 어린 날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뜨겁게 소리치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바라보는 자리로 옮겨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성장인지 냉소인지, 혹은 단순한 피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예전의 마음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올림픽이 끝나면 또 다른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금메달의 환호도, 아쉬운 패배도 시간이 지나면 뉴스 속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 기록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잠깐이라도 누군가의 도전을 보며 함께 숨을 고를 수 있다면 좋겠다.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조용해진 것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불씨가 살아날지도 모른다. 화면 너머의 경기장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그리고 이 조용함은 과연 무관심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거리두기일까.

아직 그 답은 잘 모르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