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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r 30. 2022

[이어령이 묻고 미야가 답하다] 1. 메멘토 모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아끼고 아껴 다 읽어냈다.

울컥울컥.

마음이 파도칠 때면 잠시 쉬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그 깊은 대화 속에 잠겼다.


이 소중한 대화들을 그냥 읽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까워서 작은 연결고리라도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이어령 선생님이 나눈 대화 속 단어들로 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이어령 선생님이 묻고 미야가 답하다.]


첫 시작은 '메멘토 모리'다.

"미야! 자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저긴 어디야? 앞쪽에 꽃 파는 곳들이 줄지어 있네?"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전인 '괴될레성'에 가기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괴될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시내 중앙에서 내 시선을 빼앗은 것은 '공동묘지'였다.

"거기 묘지야."

"저렇게 큰 공동묘지가 시내 한 복판에 있어? 주변에 식당도 있고, 여기가 번화가인 것 같은데?"

"응. 사람들이 오고 가기 편한 곳에 있어서 자주 들여다보라고 그런거 아닐까?"

"독특하다. 우린 사실 공동묘지하면 좀 외곽에 있잖아."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곳.

밝고 환한 그곳에 가지런히 놓인 저마다 다른 모양의 묘지석. 묘지석 앞에 놓인 꽃 송이들이 죽은 자들의 땅에 생기를 더했다.


공동체가 생활하는 한 가운데 묘지를 두는 그들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내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했다.

"유한한 인생임을 기억하며 지금 주어진 하루를 값지게 살자.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다. 죽음을 자각하고 살 때 비로소 인생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교통사고가 났다.

출근을 위해 목욕탕 앞 정류소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전화 통화를 하느라 전방 주시를 제대로 못 한 봉고차 운전자가 나를 쳤고 나는 붕 떠서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괜찮아요? 병원 가야할 것 같은데?"

웅성웅성 사람들의 목소리에 손에 쥐고 있던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단축번호 1번 좀."

떨어진 충격때문인지 몸이 내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운전자는 놀라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옆에서 보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1번을 눌러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주셨다.


급히 달려오신 아버지 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해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입원하던 날, 나에게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이었는지, 아니면 내 내면의 소리였는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 너에게 남은 시간은 잉여의 삶이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잉여의 삶?

잉여는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날이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내 생명. 내게 다시 살 시간을 허락하시며 그 분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


나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달려가던 삶을 내려놓고 이제 당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뜻이었을까?


그날 이후 죽음은 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늘  안에 머물렀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죽음을 기억하는 삶,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고통 없는 죽음이 콜링인 줄 알았나? 아니야. 고통의 극에서 만나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지. 니체가 신을 제일 잘 알았다고 말일세. 신이 없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신을 못 봐." -< p.33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고통의 극에서 만난 신의 콜링.

잉여의 삶을 당신을 위해 살라는 그 부르심을 어느새 잊고, 잉여짓으로 채워가던 내게 다시 그 부르심을 떠오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을 기억하라."


나는 어떤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죽음은 무엇인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던 바울처럼

날마다 나의 잔에 채워진 것을 비워 영원한 곳을 향하는 죽음.  내 자아가 깨뜨려지고 주님이 사시는, 매일 죽어지는 삶이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죽음이다. 여전히 그렇게 죽지 못해서 내가 시퍼렇게 살아서 영원의 충만함을 맛보고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라 부끄럽지만 그런 죽음을 날마다 꿈꾸며 날마다 싸운다.


"이어령 선생님. 저는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고 합니다. 날마다 죽는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직 철창을 나와 내 앞에 선 호랑이처럼 분명하고 선명한 모습의 죽음과 맞닥뜨린 것이 아니기에 종종 희미해져 이 마음을 놓치게 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돌이켜 이 마음을 붙들기 위해 애써볼게요. 죽음을 기억하며 진짜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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