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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借景)의 묘,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

by baekja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슈가쿠인리큐를 갈 시간이 되어 급하게 숙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숙소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숙소에서 슈가쿠인리큐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슈가쿠인리큐 근처 정류장까지는 대략 30분. 30분 동안 가면서 버스에 앉아 교토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무척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헤이안 진구였습니다. 4년 전 교토에 수학여행을 와서 본 헤이안 진구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잠시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무척 그립다는 생각을 했는데 글을 쓰는 지금도 4년 전의 제가 그립기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저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헤이안 진구를 지나 주택들만 가득한 조용한 동네에 버스가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5분 정도 주택 사이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슈가쿠인리큐의 입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슈가쿠인리큐 또한 가쓰라리큐처럼 참관자 휴게실이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슈가쿠인리큐 또한 가쓰라리큐처럼 일본인 해설을 따라가며 듣는 대신 한국어 해설이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를 주는데 그래도 해설을 들으려 했던 전날과는 달리 슈가쿠인리큐의 모습이나 열심히 눈에 담자며 해설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가쓰라리큐의 해설이 지금 전혀 기억 안 나는 것을 보면 잘한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슈가쿠인리큐의 사진조차 잘 찍어두지 않았고, 찍어둔 사진조차 전부 없어져서 기억의 재구성마저 힘든 지금은 ‘해설이라도 안 들을 거면 조금 열심히 이미지를 새겨두지.’라는 과거의 저에 대한 책망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망해봤자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현재의 제가 열심히 있는 것, 없는 것 끌어모아서 슈가쿠인리큐의 이미지를 재구성해봐야죠. 슈가쿠인리큐 이미지 재구성의 시작은 늘 그렇듯이 슈가쿠인리큐의 역사입니다.


슈가쿠인리큐를 만든 사람은 바로 고미즈노오(後水尾) 천황입니다. 이 천황이 제위에 오른 것은 1611년으로 에도 막부의 초창기였습니다. 이 천황은 에도막부가 1615년 제정한 ‘긴추나라비니쿠게쇼핫토(禁中幷公家中諸法度)’의 영향을 받는 첫 번째 천황이었습니다. 이 법도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천황은 정치에 신경 쓰지 말고 학문에나 전념해라.’였습니다. 여기에 에도에서 떨어져 있는 교토의 천황을 감시하기 위해 쇼시다이(所司代)를 설치하여 천황을 정말로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고미즈노오 천황은 이런 상황이 무척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쇼군의 딸과 결혼해야 하고, 고승들에게 옷 한 벌 하사하기 힘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삶에 짜증을 내며 천황의 자리에서 내려와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에도 시대의 유명한 작정가인 고보리엔슈에게 센토고쇼(仙洞御所)를 짓게 합니다. 이 센토고쇼는 1636년 정원까지 완공되어 다회(茶會), 시회(詩會) 등이 이루어지는 간에이(寬永)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1854년 대화재로 크게 소실된 이후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예전의 모습을 보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고보리엔슈가 만든 정원만큼은 그 명성만큼이나 건재하여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슈가쿠인리큐는 센토고쇼를 만들며 고보리엔슈의 기법을 익힌 고미즈노오 상황이 직접 만든 별궁입니다. 쇼시다이의 감시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와는 관련 없는 별궁을 짓는 것뿐이었죠. 그래서 1655년 그는 쇼군의 딸과 결혼하기 전 궁녀와 낳은 첫 번째 황녀가 비구니로 있는 슈가쿠인무라(修學院村)의 엔조지(員照寺)를 방문하고 그 풍광에 반해 그곳에 별궁을 하나 더 짓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별궁이 바로 슈가쿠인리큐입니다. 고미즈노오 상황은 엔조지를 나라에 새로 지어 옮겨주고 가쓰라리큐 등을 참조하여 슈가쿠인리큐를 직접 설계했습니다. 고미즈노오 상황이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만든 슈가쿠인리큐는 165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고미즈노오 상황의 가문에게 계속 내려오던 이 별궁은 이후 일부가 린큐지(林丘寺)의 당우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885년 궁내성에 반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슈가쿠인리큐의 면적은 545,000㎡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궁궐인 창덕궁에 맞먹습니다. 하지만, 면적은 훨씬 적은 가쓰라리큐보다 더욱 볼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건물의 수가 훨씬 적고,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저렇게 면적이 넓냐고요? 그것은 슈가쿠인리큐가 주변의 논밭을 모두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기법을 사용하여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정원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KakaoTalk_20220221_174159540.jpg 슈가큐인리큐 약도


슈가쿠인리큐는 시모리큐(下離宮), 나카리큐(中離宮), 가미리큐(上離宮)의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슈가쿠인리큐 약도를 보면 그 세 구역을 제외하고 빈 공간이 무척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정원의 완성을 위해 조성한 논과 밭입니다. 다만, 이 논과 밭은 시모리큐나 나카리큐에서는 그 면모를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시모리큐나 나카리큐는 여느 일본 정원처럼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모리큐나 나카리큐도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슈가쿠인리큐가 다른 일본 정원과는 확실히 다른 점을 보자면 시모리큐와 나카리큐에서 가미리큐로 가는 소나무길과 가미리큐를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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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리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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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리큐


처음 소나무길을 보았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길 위아래로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더 아래로 가면 교토 시내의 모습이 통쾌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죠. 울타리를 설치하여 구역을 정하고 인공적인 미를 중시하는 일본의 정원에서 쉽게 찾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오히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소백산맥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일본 정원에서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풍광 경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나무가 풍광을 가로막고 있어 논과 밭이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확 다가오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자연을 그토록 잘 빌려 경이로운 광경을 설계해두고 인공적으로 소나무를 심어 가로막는다니. 메이지 시대 이후로 심은 소나무라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가로수길의 풍경을 살리고 소나무가 주는 답답함을 없앴으면 합니다.




20180131_101917.jpg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논밭과 교토 시내 전경


20180131_101411.jpg 소나무길


소나무길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다 보면 벽 쪽에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이 심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미리큐의 연못인 요쿠류치(溶龍池)에 물을 모으기 위해 쌓은 제방 위에 정원수를 다듬어 심은 것으로 이렇게 수목을 곱게 다듬어 커다란 모양으로 만든 것을 ‘오카리코미(大刈込)’라고 합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려고 노력하면서도 인공의 미를 늘 가미하는 일본 정원의 전형적인 특색이 드러나는 제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미리큐에 올라가면 처음으로 린운테이(隣雲亭)에 올라갑니다. 린운테이에서는 요쿠류치의 전체 풍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히에이잔(比叡山) 자락이 아스라이 그 자태를 뽐내며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가미리큐에서는 대부분의 일본 정원에서 느껴지는 선(禪)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보다는 광활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어 한국의 산사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원의 느낌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이곳에 다다라서야 확실히 한국 정원과의 차이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미가 강하다는 것이었죠. 물을 막아 제방을 쌓고 강제로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의 손으로 아름답게 만든 나무들을 심은 것은 확실히 한국의 원림(園林)에서는 보기 힘든 요소들입니다. 즉, 한국이 자연을 중심으로 그곳에 인공을 가미한다면 일본은 인공으로 된 자연을 모방하거나 인공을 중심으로 자연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20180131_104936.jpg 린운테이에서 본 요쿠류치
20180131_105749.jpg 지토세바시


한국의 원림과 일본의 정원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슈가쿠인리큐를 보기는 했지만, 사실 제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은 것은 광대한 풍경의 여운입니다. 아마 히에이잔 아래로 쭉 펼쳐진 낮은 지붕들의 물결은 평생 제 마음속에 가지고 갈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무척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일본 정원의 다른 맛을 맛보고 싶다면 슈가쿠인리큐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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