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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맥주, 생의 즐거움

가와라마치역~가라스마역

by baekja

가쓰라리큐부터 지온인까지 온종일 돌아다녔는데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먹고, 저녁은 먹지도 못했으니 피곤함과 배고픔이 몰려와 숙소로 빨리 가고 싶었습니다. 야사카진자로 온 길을 되걸어 가와라마치(河原町)역까지 간 후 한큐교토선을 타고 짐을 보관해둔 시조역의 환승역인 가라스마역까지 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조역에서 짐을 다시 꺼내 예약해둔 숙소로 갔습니다.


예약한 숙소는 여관이나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가정집이었습니다. 주택가 주변에 있어 무척 어둡고 조용했습니다. 트렁크 바퀴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소음으로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었죠. 힘들게 도착한 숙소에서 열쇠를 찾는데 집주인이 알려준 위치에 열쇠가 없더군요. 한 10분 동안을 찾아도 안 나오기에 ‘오늘 길에서 자야하지 않나.’하는 위기감까지 돌았지만, 친구 A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을 물어본 결과 엉뚱한 장소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들어간 숙소는 그렇게 넓지는 않았고, 조금 넓은 원룸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무척 피곤했지만, 배고픔이 더 심해서 재빨리 짐을 풀고 숙소로 올 때 봐둔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편의점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고,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골랐습니다. 사실 먹을 것을 무얼 골랐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사진에는 미소라멘을 산 것이 찍혀 있는데 제 기억에는 전혀 없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맥주를 골라 먹었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아사히 맥주와 삿포로 맥주의 본고장이라 가격도 싸서 부담 없이 맥주를 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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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오자마자 재빨리 이런 저런 것들을 먹어 배를 채웠습니다. 맛은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친구들과 함께 맥주 캔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무척 즐거웠다는 느낌만 남아있습니다. 취직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어두운 얘기가 아닌 그날 본 것들 중에 인상적인 것,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가벼운 농담들이 오고갔겠죠. 기억에는 남지 않았을지라도 그 또한 여행을 무척 즐겁고 재밌게 만들어준 여행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일본인들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일본인들은 대부분 세상을 우키요(浮世)라고 칭했습니다. 이는 덧없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지듯이 인간의 삶도 이승에서 영화를 힘껏 누리더라도 결국 죽음에 다다라 이승에서의 모든 영화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허무한 세계 인식이 반영된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문학을 보면 어쩐지 모를 쓸쓸함과 허무함을 쉬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허무한 세계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다면 화려한 일본의 장식이나 공예품들은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일본인들은 ‘어차피 죽어 없어질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즐기자.’라는 현세적인 생각을 가지고 흥청망청 즐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4년 전 여행 둘째 날 밤도 딱 그런 느낌입니다. 4년 후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이지만, 그 당시에는 즐겁고 행복하니 열심히 술을 마시고 놀았겠죠. 현재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미래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 앞에 있는 행복이나 잘 누려야죠. 그 당시 저에게는 배를 채울 술과 흥취를 돋아줄 친구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육체와 영혼이 온전한 삶이 있었습니다. 삶을 만끽하며 보낸 그 밤의 기억은 제 머릿속에 남지 않았지만, 행복했다는 느낌만으로도,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교토에서의 두 번째 밤은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極樂に行かぬ果報やことし酒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축복

올해의 술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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