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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마츠리(祇園祭)의 중심, 야사카진자(八坂神社)의 밤

우지역~기온시조역

by baekja

우지역에서 전철에 오른 것은 대략 오후 6시였습니다. 보통 이쯤 되면 숙소로 들어가 노곤한 몸을 풀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만끽하겠지만, 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일본에 왔으니 속된 말로 ‘뽕을 뽑아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여행 계획을 짜면서 밤에도 볼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곳이 바로 기온(祇園)의 중심가에 있는 야사카진자였습니다.


우지역에서 다시 JR나라선을 타고 도후쿠지(東福寺)역까지 가서 게이한혼선(京阪本線)으로 환승하여 기온시조(祇園四條)역에 도착했습니다. 전철에 올라탄 시간이 퇴근 시간인지라 사람이 무척 많아 혼잡했습니다. 문득 이곳도 여행지이고 고도(古都)이기 이전에 일상이 지속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행객인 저에게는 조금의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기온시조역에서 나와 기온거리를 쭉 걷자 그 끝에 어둠을 몰아내는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한 큰 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야사카진자의 정문이었죠. 화려한 정문을 보면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야사카 진자 앞의 고등어초밥 맛집인 이즈주(いづ重)에서 밥을 먹으려했는데 재료가 떨어져서 더 이상 안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초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저야 그냥 그랬는데 초밥을 좋아하는 다른 두 친구는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어쩔 수 있나요? 그냥 가야죠.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지고 야사카진자를 보러 들어갔습니다.


Inked1517551420684_LI.jpg 기온 거리의 밤 모습


사실 야사카진자에서 볼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신사 문화가 잘 이해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신사들 중 하나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그저 밤의 조명이 화려한 신사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사카진자가 기온 거리의 중심에 있음을 생각해보면 일단 이 신사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사의 별칭이 기온에 사람을 나타내는 호칭인 상(さん)인 ‘기온상’인 것과 현지 사람들이 기온에서 약속을 잡을 때 보통 이 신사의 정문을 약속장소로 선택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곳이 위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으로도 교토의 화려한 문화를 상징하는 기온 거리의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야사카 신사가 어떤 시간을 담고 있기에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교토가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인 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1518270352845.jpg 야사카진자 정문


야사카진자 소장의 ≪야사카향진좌대신기(八坂鄕鎭座大神記)≫를 보면 “사이메이천황 2년(656년) 8월 가라쿠니(韓國) 조진부사(調進副使)인 이리시노오미(伊利之使主)가 내조하여 신라 우두산(牛頭山)에 진좌한 스사노오(須佐之男)의 신령을 이곳 오타기군 야사카향에 모심으로써 야사카향의 토지와 야사카노미야쓰코(八坂造)라는 성(姓)을 수여받았다. 그 후 12년 뒤인 덴지천황 6년(667년)에 사호를 감신원(感神院)이라 하고 사전을 조영해서 우두산에 진좌한 대신을 우두천왕(牛頭天王)이라 칭하여 제사지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니혼쇼키≫, ≪신센쇼지로쿠≫와 같은 다른 책들을 대조해보면 이리시노오미가 고구려 사람임을 알 수 있으며 그를 중심으로 고구려 도래인들이 야사카진자가 지어진 야사카 지역에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의 마지막에 야사카진자의 제신으로 삼았다는 우두천왕은 불교, 음양도, 신도 등이 복잡하게 습합한 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에 나온 것처럼 감신원, 기온사(祇園社)로 불리며 제신으로 우두천왕을 모셨던 야사카진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이름이 지금의 야사카진자로 바뀌고 스사노오를 제신으로 모시는 현재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야사카진자가 깊은 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전국에 2,651개의 분사를 가진 야사카진자의 현 위세를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야사카진자의 주도로 열리는 교토의 3대 마츠리(祭, 축제)인 기온마츠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교토의 3대 마츠리에는 헤이안진구(平安神宮)에서 열리는 지다이마츠리(時代祭), 가모진자(賀茂神社)에서 열리는 아오이마츠리(葵祭), 그리고 야사카진자에서 열리는 기온마츠리가 있습니다. 이 셋 중에서도 가장 큰 행사가 기온마츠리로 무려 1개월에 걸쳐 열립니다. 매년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열리죠. 이렇게 거대한 행사인 기온마츠리에 대한 복잡한 설명보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도≫에서 설명하는 기온마츠리를 통해 기온마츠리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먼 곳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은 흔히 기온마츠리가 7월 17일 야마보코(山鉾, 산 모양을 한 화려한 수레) 순례가 있는 하루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16일 밤에 요이야마(宵山, 교토의 기온마츠리의 야마보코 순행 전날(7월 16일) 밤에 행해지는 행사)에 몰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마츠리 행사는 거의 7월 한 달 내내 계속된다.

7월 1일에 각각의 야마보코 마을에서 ‘부적 넣기’를 한 다음 풍악이 울리면 시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태운 나기나타보코(金刀鉾, 높이 25m의 긴 창을 단 수레)가 해마다 행렬의 선두에 서는데, 그 나머지 야마보코의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7월 2일이나 3일에 시장이 제비뽑기 행사를 거행한다.

7월 10일 ‘가마 씻기’는 실제 마쓰리의 서막이다. 가모가와의 시조오하시(四條大橋)에서 신위를 모신 가마를 씻는다. 그러나 진짜로 씻는 것이 아니라 신관이 비주기나무를 물에 적셔서 가마에 뿌리는 정도로 끝난다.

11일에는 치고(稚兒, 신사나 절의 제례나 법사의 행렬에 곱게 단장하고 참가하는 어린이)가 기온 절에 참배를 한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기온마츠리의 모습이 이제 이미지로 그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온마쓰리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예전처럼 66개 마을이 참가하여 특색 있는 수레를 자랑하는 정도로 매우 큰 규모는 아니고, 점점 쇠퇴하여 지금은 2013년 기준 31개 마을만 참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온마츠리의 축제와 같은 모습은 유지되어 요이야마 날에는 많은 상점들이 늦게까지 열고, 많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밤새 흥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통이 유지되고 있는 점을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츠리의 기원은 고료에(御靈會)입니다. 고료에는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인간의 사령인 ‘온료(怨靈)’ 혹은 ‘고료(御靈)’의 다타리(祟り, 뒷탈, 앙화)를 두려워하여 그들을 달래어 복과 풍양을 얻기 위한 행사입니다. 고료에의 기원은 ≪삼대실록(三代實錄)≫에 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863년 5월 역병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이와(淸和) 천황의 칙령에 따라 교토 신센엔(新泉苑)에서 억울하게 죽은 간무천황의 동생 사와라친왕(早良親王)과 이요친왕(伊予親王) 등 6명의 어령을 위무하기 위해 독경과 아악연주 및 가무 등을 봉납한 것이 고료에의 시작인 것이죠.


≪기온사본연록(祇園社本緣錄)≫에는 이로부터 6년 후 기온마츠리의 기원이 된 기온고료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병이 유행하여 조정의 명령을 받은 우라베 히라마로(卜部 日良麻呂)가 6월 7일에 구니(國, 고대 일본의 지방행정구역 단위) 숫자에 따라 길이 2장(丈)의 창 66개를 세웠고, 6월 14일에 교토 낙중의 남아와 근린 백성들을 이끌고 신여(神輿)를 신센엔으로 보내어 거기에 모셨다. 이를 기온어령회라 한다. 매년 6월 7일과 14일이 항례제사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예전에는 66개의 수레가 아닌 창을 들고 행진을 했고, 신을 모신 수레를 신센엔으로 가져가는 것이 기온마츠리 행렬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열심히 야사카진자의 내력과 야사카진자에서 열리는 기온마츠리에 대해 설명했지만, 사실 실제로 볼 때는 한 겨울이라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축제가 열리는 거대한 신사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방문한 시간도 한밤중이라 무척 어두워 신사 전체의 모습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조명을 켜둔 채 운영한다는 점이나 한겨울의 밤에도 많은 현지인들이 찾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야사카진자가 얼마나 교토인들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장소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사카진자를 슥 둘러보고 뒤로 나가 보니 어둠에 깔린 공원이 있었습니다. 곳곳에 가로등이 몇 개 켜져 있었지만,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마루야마(円山) 공원이었습니다. 한겨울의 늦은 밤이라 사람은 거의 없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것은 저와 친구 둘까지 셋뿐이었습니다. 으스스함을 뼛속까지 느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왔는데 우연히 한 삼문(三門)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3대 삼문 중 하나라는 지온인(知恩院)의 삼문이었습니다.


KakaoTalk_20220208_105103144_10.jpg 지온인 삼문


거대하고 아름다운 삼문 위에서는 보름이 하루 남은 달이 은은한 달빛을 뿌려 지온인 삼문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밝은지 검은 밤의 장막 뒤로 숨은 하얀 구름마저 장막 앞으로 데려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기와와 나무의 구조물 위에 뜬 달,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한데 홀로 빛나는 유일한 존재. 그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뼛속 깊이 전해져왔습니다. 여태껏 본적 없는 달의 모습에 달구경하는 법을 새로 배우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셋이서 한참 달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구경을 멈춘 것은 구름이 달을 가린 후였습니다.


あの月に敎へられたる月見哉


저 달에게

배우는

달구경이어라


-후지모리 소바쿠(藤森素檗)



雲折折人を休むる月見哉


구름이 이따금

달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네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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