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역
겨울이 살짝 머무른 3월 3일 봄의 아침, 햇살이 따스하여 햇살에만 머무르고 싶은 그런 날씨 오산역을 찾았습니다. 7개월간의 교보문고 알바를 마무리하고 잠시 집으로 내려와 쉰 후 다시 서울의 고시원으로 가는 날, 조금 편한 버스를 내버려 두고 집에서 20분 조금 넘게 걸어 오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이 적지는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출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아홉 시의 역 주변은 평범하고도 무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산역 1번 출구 바로 앞에서 주머니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스크였습니다. 거의 3년 만에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대중교통 안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기에 집에서 깜빡하고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은 나를 탓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편의점 마스크를 하나 샀습니다.
마스크를 들고 개찰구를 지나자 약간 마음이 아프신 듯한 분이 큰 소리로 떠들며 빈 복도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그냥 쳐다보며 나는 1호선 상행 방향의 승강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상 승강장은 꽤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가끔 들리는 까치 소리만이 내 귓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천천히 걸어 맨 끝쪽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엉덩이가 차가웠습니다. 가방을 내려두고 가만히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보였습니다. 기둥은 색바랜 푸른색으로 채워져 있었고, 몇몇 떨어져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부분은 붉은 녹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무척 오래된 곳임을 말하는 듯했습니다.
오산역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 맞습니다. 1905년부터 오산역이 있었으며 경부선 초창기부터 존재하던 역이고, 열차가 사람을 계속 실어날랐던 역이었습니다. 늘 오산 지역의 중심이었던 이 부근은 오산이 화성에 포함되어있었을 때는 화성의 중심이었고, 오산이 시로 승격된 이후로는 오산의 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차역의 이야기이고 사실 제가 서 있던 1호선이 지나는 승강장은 2002년에 완성된 역사에 소속된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수도권 1호선 전철이 오산역을 지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임을 생각해볼 때 사실 무척 오래되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 늘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 역은 제 기억 속에서만큼은 무척 오래된 역입니다. 제가 오산에서 살기 시작했던 것은 대략 2001년부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저의 삶에서 오산역은 지금 있는 이 승강장이 포함된 이 건물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위에 오산역환승센터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 아래 철도가 지나는 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오산역에 담긴 시간을 감각에 담고 있을 때쯤 옷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제 목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늘진 벤치 위에 앉은 엉덩이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지붕 틈새로 새어 나와 역 주변 곳곳을 데우는 햇빛이 제 목에 내려와 앉아 있었습니다. 제 몸의 위는 따뜻하고 아래는 차갑다고 느낄 즈음 스크린도어 사이로 휙 하고 바람이 불어와 햇빛의 따스함을 날려버리고 갔습니다. 봄이 올 듯 말듯한 그 상황이 왠지 모를 미소를 자아냈습니다. 아직 가기 싫은 겨울과 빨리 오고 싶어하는 봄의 밀고 당기기가 그 작은 벤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3월 초의 그 날이 한 계절의 끝이자 시작이었듯이 오산역은 내 삶에서 시작이자 끝이었고, 출발지이자 목적지였으며 시작점이자 종착점이었습니다. 시작하는 설렘과 끝에 다다랐다는 편안함을 전부 주는 곳이었습니다. 집을 나가거나 집으로 오는 경유지에 불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을 나가고 집으로 오기 위해 꼭 지나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지나치는 역이 아니라 내 삶의 시작과 끝에 있는 필수적인 곳이었습니다. 또한, 대학 친구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방문하는 관문 같은 곳이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나를 상징하는 나의 고향이었습니다. 과거형으로 말했지만, 이는 현재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가까운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사실입니다.
오산역 승강장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과거의 영광이었던 폐공업단지가 보이고 현재를 이끌어가는 물류센터가 보입니다. 조금 더 시선을 멀리하면 비위생매립지와 하수처리시설이었던 부지 위에 지어진 맑음터 공원이 보입니다. 오산역 주변의 환경은 10여 년 전의 내가 보던 풍경과는 무척 다르고 앞으로 계속 달라질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합니다. 오산역은 변화할 것이고 그 주변 또한 변화할 것입니다. 역사(驛舍)가 만들어진 후 여태까지 변하지 않았던 승강장의 화강암 바닥도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오산역이 가지는 의미는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사는 곳이 달라져 더는 오산역을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되더라도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내 삶의 시작이자 끝인 오산역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벤치에서 일어섭니다. 잠시 내려두었던 묵직한 검은 가방을 다시 등에 멥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열차가 올 시간인지 사람이 꽤 불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저뿐, 모두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없었을 광경. 그 즈음의 사람들은 승강장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며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저도 천천히 오산역 승강장에서 발걸음을 떼고 열차에 올라탑니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잠시 멈췄던 하루를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