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대학로와 연극으로 유명한 이 역의 이름은 사실 그러한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역 주변에서 조금 떨어진 서울성곽의 사소문(四小門) 하나인 혜화문(惠化門)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죠. 혜화문은 일제강점기에 다 무너지고 1992년에 복원한 것이지만,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이 주변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초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동쪽에서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해온 이 공간은 그 시간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주말 점심시간, 근처에 먹거리와 즐길거리가 꽤 있는 혜화역엔 사람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승역은 아닌지라 열차만 왔다하면 승강장에 모인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습니다. 빠져나간 틈을 타 벤치에 앉아 스크린도어를 멍하니 바라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역을 찾았던 나날들을 떠올렸습니다. 가족들과 다함께 국립서울과학관(現 국립어린이과학관)을 방문했던 것, 친구와 낙산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야경에 감탄했던 것, 친구를 찾아 성균관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성균관의 문향(文香)을 맡았던 것, 서울대 치의대를 다니는 친구와 만나며 근처에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었던 것, 그리고 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궁인 창경궁을 방문했던 것까지. 공간에 쌓인 시간들로 만들어진 컨텐츠들을 마음껏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혜화역과 함께 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국립서울과학관에 있었던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혜화역에서 내려 성균관대까지 천천히 걸어가 가족들과 재밌게 특별전을 관람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노벨상에 관한 특별전이었는데 기억이 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상세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 아버지가 길가 포장마차에서 사는 번데기를 사서 맛있게 먹었던 것입니다. 그걸 동생은 따라 맛있게 먹었지만, 저는 도저히 먹질 못했고, 지금도 먹을 수 없습니다. 저는 번데기 옆의 소라를 받아서 열심히 빨아 먹었던 것만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흐려진 몇몇 장면만 남은 혜화역과 함께한 오래된 기억은 그것 하나 뿐입니다. 그 다음 가장 먼저 혜화역을 방문했던 것은 아마 성균관과 창경궁을 보았을 때일 것입니다. 사실 성균관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답사가 아니라 성균관대 다니는 친구를 보기 위해 본 것이었지만, 성균관 주변을 둘러싼 여러 신식 건물 사이에서 범접할 수 없는 고식(古式)의 문향이 멀리서도 느껴졌습니다.
성균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성균관의 학생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드나들고자 했던 궁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은 창경궁입니다. 햬화역에서 정문이 가장 가까운 이 궁궐은 제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궁궐입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고 누각들이 빼곡하지 않아 궁궐이라면 으레 느껴질 답답함이 가장 덜한 궁궐이지요. 가끔 마음을 쉬러 제가 혜화역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혜화역 주변에 혜화문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서울의 동쪽 성곽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내사산(內四山) 중 동쪽 산인 낙산이 혜화역에서 가까운 것은 그 유래를 따라가면 당연한 일이죠. 이제는 야경으로 유명한 낙산을 요즘은 간혹 혼자 산책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처음 방문했던 것은 친한 친구와 함께 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서울, 거리는 커플들과 캐롤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들뜬 마음이 곳곳에서 새어나왔지만, 저와 친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년 병장들이었고, 여자친구는 없었으며, 만날 친구가 없어 둘이서 만난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낙산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에 편승하여 꽤 즐거운 이야기를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의 만남이 좋았던 이후 낙산공원 또한 혜화역 옆에 있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이런 것들만 있었으면 혜화를 그리 많이 방문하지는 않았을텐데 한 친한 친구가 이 근처로 이사를 오는 통에 혜화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치의학 대학원에 입학한 친구가 이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친구들 모임의 아지트가 되었고,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은 혜화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 집에서 먹은 고기와 술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모여서 한 이야기들은 혜화역의 텅 빈 공간들을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대의대는 다 겉으로만 보고 들어가보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좀 신기하긴 합니다.
이외에도 마로니에 공원을 방문하고 아르코 미술관을 가거나 친구 초청으로 연극을 본다든가 하는 등의 경험들도 했습니다. 정말 다양한 경험이 혜화역 주변에 쌓였습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이 쌓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그 장소에 많은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혜화문과 서울성곽으로 시작해 성균관과 창경궁으로 이어진 조선왕조 대의 이야기, 그 조선왕조를 완전히 무너뜨린 일제 식민지 시기에 세운 경성제국대학, 그리고 그 경성제국대학에서 변모한 서울대학교의 연건캠퍼스와 성균관의 뜻을 이어받은 성균관대학교, 그 주변을 둘러싼 청춘들의 즐길거리 가득한 대학로까지. 이미 혜화역 주변에 모이고 쌓인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혼자 즐기기도 하고, 친구들과 즐기기도 하면서 혜화역 주변의 이야기들을 다채로운 경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저의 다양한 추억으로 남아 늘 저를 웃음지게 할 것입니다. 무척 많은 이미지가 함께하는 혜화역은 4호선의 파란 하늘색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풍성한 빛깔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빛깔들은 더욱 다양해지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