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어딘가, 나의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by baekja

이 역의 이름은 한성대입구이지만, 전 단 한 번도 한성대를 방문하러 이 역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 역은 한 1년 반 전까지는 제가 그저 이름만 알고 있는 역에 불과했습니다.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어색한 역. 한성대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저는 아마 평생을 통틀어 이 역을 가볼 일이 없을 거라 단정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과거의 순간들에 이 역들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역을 여행하러 왔습니다.


오후 12시 절대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은 시간의 이 역 구석의 한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앉았습니다. 편히 짐을 내려놓고 앉아 이 역과의 첫 만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진짜 첫 만남은 훨씬 전이었지만, 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1년 반전 최순우 옛집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라는 중학교 필독서를 쓰신 유명한 미술사학자입니다. 한국미에 대해 늘 고민하고 한국미를 사랑하셨던 선생의 생각이 가득 들어간 이 책은 가끔 읽을 때마다 그 유려한 표현에 감탄하며 읽지요. 이제 ‘한국내셔널트러스트’라는 시민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최순우 선생의 옛집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곳곳에 담긴 이 옛집의 마루에 앉아 멍하니 있기만 해도 집안을 풍성하게 꾸미는 정원 덕분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편안함을 느낄 때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어우러진 한 아름다운 쉼터에 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이 집이 마음에 들었고, 이 집까지 데려다 준 한성대입구역 또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최순우 옛집을 방문하고 구경한 후, 감성과 여유에 젖어 집 문간을 지나 한성대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올 때는 보지 못했던 관광 안내판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북동이라 이름 붙은 이 주변엔 생각보다 제가 아는 곳들이 참 많았습니다. 왕비 주관으로 양잠의 신인 서릉씨에게 제사 지내는 곳인 선잠단, 원래는 유명한 요정(料亭)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인 김영한 씨가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여 만들어졌다는 길상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그 재산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민족 교육에 사용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보화각(寶華閣) 등, 제가 알고 있거나 방문했던 장소들이 성북동 관광 지도에는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성북동 관광지도를 보며 두 번 놀랐는데 첫째, 이 주변이 말로만 듣던 성북동이라는 것에 놀랐고, 다음으로 제가 여기 있는 몇몇 장소를 방문해봤으며 이 장소들을 방문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이미 한성대입구역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미 방문했던 길상사와 보화각 모두 지하철을 타고 방문했으니 저는 벌써 한성대입구와의 만남이 최소 세 번째였다는 것입니다. 세월의 풍화를 비켜간 켜켜이 쌓인 먼지 같은 기억들 밑 무의식에 자리한 과거의 경험. 그 안에 한성대입구역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지하지 못한 과거, 그 과거 안에서 한성대입구역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신문에서 간송에 대해 처음 알게 되고, 그를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그가 모은 유수의 한국 미술품들을 보고 싶을 때쯤 간송미술관, 그러니까 보화각 건물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정기적 전시를 해서 많은 이들이 간송의 컬렉션을 쉬이 볼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보화각 건물에서 봄, 가을 딱 두 번 보름씩만 전시를 했었습니다. 공간 또한 제법 협소했는데 1938년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사립 미술관으로는 아주 혁신적인 공간과 넓이였겠지요. 그렇게 한성대입구역을 통해 엄마와 동생과 방문한 보화각에서 만났던 작품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중학생의 지식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 미술 작품을 알았을까요? 거의 몰랐습니다. 그냥 기억에 남는 건 보화각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과 그 앞에 수풀 가득한 녹음이 흘러넘치다 못해 마음까지 점령하던 아름다운 정원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년 보화각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제가 사랑했던 그 많은 것들이 거의 사라져 있어 슬펐었는데 텅 빈 보화각의 2층에 정원의 사계를 모아둔 영상이 있어 아련한 추억에 잠겨 뚫어져라 한동안 쳐다보았습니다.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보화각의 정원, 제 의식의 기억 속에 남은 필름들 뒷면의 무의식에는 그 장소로 저를 데려다 준 한 역이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역사가 깊은 절도 아닌 길상사를 방문했던 이유는 종교학 답사로 그곳을 갔기 때문입니다. 역 근처가 집합 장소였는데 아마 그곳이 한성대입구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수유 근처에 살았으니 4호선을 타고 어렵지 않게 집합 장소에 도착했었겠지요. 인문학적 시선에서 불교적 요소들이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마음을 유추해보라던 교수님의 말씀은 제 기억 속에 있지만, 당시 새내기였던 저는 그 말들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느긋하게 걸어 절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절 내에서는 49재가 진행 중이었는데 절을 뒤덮는 향냄새와 검은색 옷들의 행렬만이 제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순간 본 이미지가 제게 있어 그날 답사에서 본 것 중 가장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길상사에서 다른 곳으로 갈 때도 지하철을 탔었는데 한성대입구역의 이미지는 머릿속에 아예 자리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에는 정말 뭐가 씌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저는 다시 한성대입구역을 이용했고, 무의식 안에 잠겨 있던 한성대입구역은 다시 기억의 위로 떠올랐습니다. 성북동을 방문하는 내내 이용했던 그 역은 늘 그 위치에 있었지만, 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한 곳인 최순우 옛집을 가지고 있고, 동네 골목마다 역사를 가진 이 동네와 연결된 이 역을 이제 방문하지 않을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전에도 저를 이 동네에 데려다 준 한성대입구역에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며 이제는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 역과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4호선에 올라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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