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
주말 오전 11시, 사람이 많은 한 역을 방문했습니다. 2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이 사당역이었죠. 딱히 사당역에서 내려 어딘가를 방문할 일이 없었던 제가 생각하는 사당역의 이미지는 끊김입니다. 2호선은 이 끊김과 크게 상관이 없지만, 4호선은 아주 크게 상관이 있습니다. 4호선 하행을 타면 뭐만하면 사당행에 걸려 오이도행이나 안산행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죠. 어디론가 가다가 끊겨 다시 갈아타야 하는 역. 끊김의 역, 그것이 제가 사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입니다.
끊긴다는 것은 종점에 이른다는 것이고, 보통 종점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사당역이 종점인 사당행을 타고 온 사람들이 승강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도 많고, 사람 많은 2호선에서 사람 많은 4호선으로 사람들이 오고 갈 때도 많습니다. 여기가 더욱 복잡해진 것은 지하철 때문만이 아닙니다. 환승이 가능한 수도권 광역버스들이 이곳을 요충지로 삼으면서 환승을 통해 돈을 절약하기 위해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수도권 주민들이 서울로 출퇴근할 때 이곳을 자주 드나들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사당역을 비롯한 이 주변은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교통의 요충지다 보니 상점도 많이 이 주변은 매우 혼잡합니다. 큰 사당이 있었다거나 옛집들이 많아서 붙었다는 이 역 이름의 유래와는 이젠 멀리 떨어져버린 경관이 주변을 메꾸고 있는 것입니다.
혼잡한 곳을 싫어하다 보니 정말 방문할 일 없었던 이 역을 처음으로 이용한 것은 대학교 1, 2학년 때 했던 상하차 알바 때문입니다. 저는 CJ옥천 Hub에서 상하차를 했었는데 원래는 집인 오산에서 통근버스를 탔으나 종종 서울에서 통근버스를 탈 때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움직이는 통근버스는 오직 사당에서만 운행했기에 일이 끝나고 바로 서울로 올 때는 사당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옥천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꽤 있고, 상하차는 연장 근무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정작 사람 많을 때 사당역을 이용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매우 고된 일을 마치고 온 저에겐 무척 다행이었죠.
그렇게 4호선 승강장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간만에 먹은 컵라면에 배가 살짝 놀란 듯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사당역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꽤 큰 역이라 그런지 개찰구 내에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화장실이 생각보다 좁았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은 많은데……. 주말이라 4칸의 변기가 꽉 찬 정도였고, 줄 선 사람은 없어서 제가 줄 앞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사당역 여행은 벤치가 아니라 변기 앞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가 사당역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것은 딱 한 번,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대한제국시기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운명은 매우 기구했습니다. 원래 현 우리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이 건물은 1919년 충무로로 옮겨져 요꼬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으로 쓰이다가, 다시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해군헌병대에서 사용하였습니다. 1970년부터는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이 불하받아 사용하다가 은행 측에서 그 자리에 건물을 짓기 위하여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부터 서울시에서 무상임대를 받아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건물이 위치한 공간은 계속 변화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건물 내의 공간 또한 변화했습니다. 건물의 겉모습은 시대를 거슬러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주변경관과 건물의 위치, 그리고 건물 내부는 계속 변화한 것입니다.
그때 변기 칸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아, 이런 좌식 변기(슬리퍼 모양) 칸이었군요. 정말 급할 땐 사용하기는 하지만, 당장은 그렇게 급하지 않아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몇 십 년 전만 해도 수세식은 첨단 기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문득 답사할 때 들렸던 절간 화장실이 생각났습니다. 매일 그런 곳을 이용해야 한다니 불편해서 못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해보지 않았다면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겠죠? 시대의 변화가 만든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변화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을 때쯤 좌식 변기 칸이 열렸습니다.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좌식 변기 칸으로 들어갔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사당역,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화장실이라는 공간들의 변화는 잠시 잊고.
이게 웬걸. 물을 안 내리고 그냥 갔더군요. 재빨리 물을 내리고 다시 변기에 앉으며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변하고 공간도 변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지만, 인간의 이기심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많은 물질적인 것들이 변해도 본질적인 마음에 관한 것은 시대를 관통하며 변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한 진리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일상을 털어버리러 온 여행인 만큼 그 생각을 끝으로 시원하게 물을 내리고 손을 씻어버리면서 30분 동안 계속했던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은 사당역 화장실에 그냥 놔두고 왔습니다. 아, 물론 물은 잘 내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