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
4월 초 오후 4시경, 날씨가 꽤 따뜻할 즈음이지만, 신도림역은 좀 추웠습니다. 제가 내린 1호선 승강장은 지상이지만, 지붕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았고, 바람까지 더해져 쌀쌀함이 몸 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신도림역 1호선 상행 승강장에 멈추어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신도림역에서 멈추어 기다릴 때는 배차 간격이 긴 신창행이나 천안행을 기다릴 때말고는 없었으니까요. 아, 개찰구 내에 화장실이 위치한 역이라 화장실을 이용하러 멈추어 선 경험도 더러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역이지만, 여기서 하는 일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1호선 하행 열차를 기다리고, 화장실을 가고, 또는 남는 시간을 틈타 주전부리를 입에 넣기도 했습니다.
무척 신기한 건 구조 하나하나가 익숙한 이 역의 개찰구 밖을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도 막 상경했을 때도 서울과 고향을 계속 오가는 현재도 신도림역은 1호선에서 2호선으로, 또는 2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역이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신도림역은 단순한 환승역의 느낌은 벗어나 있습니다. 열차들을 기다리면서 많은 시간을 지내기도 했고, 서울에 올 때면 꼭 신도림역에서 환승해야 한다는 인식이 잡혀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산역에서 전철로 서울에 향하는 방법은 단 하나 1호선을 타는 것입니다. 이 1호선을 타고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환승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수원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하든가 금정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수원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방법은 너무 오래 걸려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금정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고 서울로 가는 것은 제법 이용하기는 하지만, 뭔가 자연스럽게 서울에 들어가는 기분이고 이 또한 1호선을 타고 신도림으로 가는 것보단 그 빈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무언가 제게 서울의 경계 느낌을 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죠.
제가 집에서 학교로 향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신촌역과 이대역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전부 2호선이기에 자연히 위의 방법들 보다 신도림역을 이용하여 서울에 들어오는 상황이 많아졌습니다. 아, 진짜로 신도림역이 서울의 경계에 위치한 역은 아닙니다. 경계보다는 조금 안쪽에 있는 역이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1호선 지하철에 내려 환승통로의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그 길을 걸을 때 서울의 경계를 넘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열차 문이 열리고, 승강장의 화강암 바닥에 천천히 혹은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서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출퇴근 지옥’이라는 이명을 가진 만큼 많은 이들이 열차에서 내리고 환승통로로 모여드는 그 광경을 보며 서울에 도착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죠.
제 고향과 같이 쉬는 곳이 오산이라면 제가 공부하고 일하는 곳은 서울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1호선을 타고 긴 시간을 지나 신도림역에 도착하는 순간 저는 하루가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편안히 쉬던 곳을 지나 막 일터를 향해 확실한 발걸음을 옮기는 하루의 출발선에 선 기분이죠. 그래서 신도림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간을 확인합니다. 수업 혹은 약속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면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적게 남았다면 초조한 마음을 잰걸음에 나타냅니다. 반대로 신도림역을 빠져나갈 때면 늘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데 공부와 수업이 힘들었던 날이면 그 피곤함에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즐거운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아쉬움으로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서울을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그 모든 감정과 발걸음이 신도림역과 함께 했습니다.
매일 오산과 서울 사이에서 그 두 곳을 오가기 위해 이용했던 경계 위에 앉아 있으니 조금 생경했습니다.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 같고, 열차를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목적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금 어색해졌습니다. 그 어색함을 느꼈는지 비둘기가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승강장과 지붕 사이로 들어오며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비둘기는 새카맸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에 이제는 완전히 적응해 버린 것 같은 그 비둘기는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늘 보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한 생물은 어색할지 모르는 이 여행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는 듯 제가 앉은 벤치 옆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고 몇 십 초가 지나 비둘기는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여기가 너에겐 서울의 경계이지만, 나에겐 중요한 삶의 터전이라고 말하는 듯이 빠르게 먹을 것을 찾아가는 그 발걸음은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한 생물의 삶의 터전,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어색함은 사라졌습니다. 누구나 다른 목적으로 장소를 찾기 마련이니까요. 한 30분쯤 남의 시선에서 떨어져서 이 장소에 앉아 있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은 편안해졌지만, 공기는 더욱 차가워져 제 옷 안으로 한기가 찔러 들어왔습니다. 더 오래 앉아있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며 항상 밟아온 서울의 경계를 힘차게 다시 한 번 밟아주고, 늘 그랬듯이 경계를 넘어 그 안쪽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