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왕십리역에 도착했을 때는 1시 40분경.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뭘 먹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왕십리역은 무척 큰지라 다양한 상점들이 개찰구 내에 있습니다. 편의점과 분식집을 찾아 삼각김밥과 오뎅을 먹고, 뜨끈한 오뎅국물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매우 맛있었습니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슬슬 앉을 벤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벤치는 왕십리역 2호선 외선순환행 승강장의 벤치였습니다. 경의중앙, 수인분당, 2호선, 5호선이 모인 무척 큰 역이다보니 사람들이 승강장에 매우 많았습니다. 곧이어 열차가 지나고 승강장에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나는 바로 벤치에 앉았습니다.
위에 엔터식스라는 거대 쇼핑몰이 있을 정도로 큰 왕십리역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술을 잘 마셔주는 친구가 한양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술 먹고 집에 돌아가느라 정작 위의 큰 쇼핑몰을 구경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특히 적당히 술 먹고 돌아가야지라는 개념이 잡히기 전인 1학년 1학기 자주 이곳을 방문하며 친구와 술을 굉장히 많이 마셨습니다. 당연히 필름이 끊겼고, 재밌는 썰들이 다수 생겼습니다.
처음은 1학년 4월 초였습니다. 올해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온으로 인해 벚꽃이 빨리 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벚꽃은 초중순에 피었으니까요? 한양대 다니는 친구의 초대로 많은 사람들이 왕십리에 모여 술을 먹었습니다. 1차를 마시고 이미 잔뜩 취해 있었는데 2차를 가게 되었습니다. 술에 이미 절은 머리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할 리가 없죠. 저도 신나서 따라갔습니다. 2차는 한양대 어딘가의 벚꽃나무 아래였다고 합니다. 이미 2차부터 기억이 안 났습니다. 그 와중에 나머지 친구들은 다 가고 한양대 친구와 저 둘이서 3차도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화장실 변기에 토를 시원하게 했고, 친구는 저를 2호선을 태워 보냈답니다. 이 모든 상황이 기억이 안 나는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구로행 버스에 올라탔을 때였습니다. 안경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은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길로 바로 보이는 24시간 순대국집에 들어가 택시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아, 당시에 저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슬라이드폰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횡설수설했지만, 착하신 아주머니께서는 택시를 불러주셨습니다. 그걸 타고 연희동 고시원에 도착하니 1시쯤. 택시비는 15,000원(지금 생각하니 정말 싸네요).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저는 일단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단체 톡방에 올라온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날 저녁에 또 해장술이랍시고 다시 왕십리를 찾았습니다. 한양대 나온 친구와 둘이서 술을 먹던 도중 친구는 톡방에 올라온 단체 사진 말고도 제가 벚꽃나무 아래에서 온갖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와. 진짜. 저게 나라고? 믿을 수 없었지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믿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2차부터의 이야기의 중간까지를 들을 수 있었죠. 왕십리역에서 2호선까지 밀어넣어주었다는 친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직도 미스터리인건 제 안경은 당시 어디 갔으며, 어떻게 저는 2호선에서 버스로 환승했나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제 인생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철이 들지 못한 저는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러 다녔습니다. 아니, 술을 찾아다녔습니다. 하루는 술자리를 찾는데 실패하고, 고시원 침대에 앉아 가만히 있는데 한양대 친구가 제 단톡에 올린 메시지에 답장을 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2차인데 2차가 곧 끝날 거 같으니 저랑 마시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룰루랄라 짐을 챙겨서 신촌역으로 달려가 2호선을 타고 왕십리에 도착했습니다. 아, 유유상종이라고 그 친구도 2차 중에 필름이 끊겨버렸습니다. 왕십리에 막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는 연락이 끊겨서 저만 왕십리에 남겨진 꼴이 되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갈까 고민을 하다 돈도 아까우니 신촌까지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술을 못 마셨으니 술도 마실 겸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가지고 슬슬 걸어가기로 했습니다.(제정신인가?)
술을 홀짝홀짝 마시며 걸어가는 와중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근처에서 얼굴에 피를 칠한 무서운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체구는 크지 않았습니다. 척 봐도 얼굴은 가짜 피였는데 이렇게 묻더군요.
“학생, 내가 좀 다쳐서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돈 좀 있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근처는 밝은 편이기는 했지만, 아저씨를 만난 곳은 좀 어둑어둑해서 당황하고 있는데 아저씨 눈길이 제 술병으로 넘어갔습니다.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를 못 이긴다고 하던가요? 아저씨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바로 "싫습니다."하고 그 옆을 지나갔습니다. 쫓아오지도 않고 저 멀리 갔습니다. 시청 근처에서는 경찰 아저씨들을 보고 괜히 쫄려서 메고 온 가방에 잠시 술병을 집어넣고 가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당연히 할 만한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면 무언가 특이한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있었나 봅니다.
왕십리(往十里)의 뜻은 ‘십 리를 간다.’입니다. 아마 저는 왕십리만 도착하면 말 그대로 정신이 제 몸에서 십리를 갔던 모양입니다. 그런 광기 넘치는 추억들이 왕십리에 가득히 있으니 말입니다. 뭐 정도는 다르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만을 반복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왕십리에서 친구를 만날 때 편안한 일상의 추억들도 쌓아놨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가끔은 그런 일상이 저는 너무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여러 방면으로 그 지루함을 풀려고 노력하지만, 당시에는 가장 편하고 재밌는 방법으로 친구와 마시는 술 혹은 혼자서라도 술을 진탕 마시는 방법으로 풀려했던 듯합니다. 뭔가 그러지 않고는 당시에 느끼는 시간들이 무척 재미없고 평범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왕십리역 벤치에 앉아 삼십 분 정도 과거 생각을 하니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하지 못할 그러한 경험들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당시 술에 미쳐있었던 저는 이제는 가만히 벤치에 앉아 공상을 하는 것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역에서 가만히 과거 회상을 하는 것도 나름 미친 짓이라면 미친 짓이겠죠. 조금 조용한 미친 짓을 마치고 서서 방금 열차가 지나 사람들이 빠진 왕십리역 2호선 승강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는 친구들이 졸업해버려 올 일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가만히 과거의 미친 짓을 생각하고 오늘의 미친 짓을 마무리하며 마음을 부산스럽게 한 일탈을 뒤로 하고, 일상의 지하철을 조용히 기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