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그리움

남부터미널역

by baekja

고속터미널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남부터미널역은 3호선 하나만 다닙니다. 역의 노선이 하나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남부터미널역은 고속터미널역보다 훨씬 작으며 남부터미널 또한 고속터미널보다 작습니다. 하지만, 제게 고속터미널보다 훨씬 익숙하며 가끔 이곳에 내릴 때마다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남부터미널에 내려 여행을 시작했을 때도 저는 바로 향수에 빠져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오산에서 버스로 서울을 올 때 5300번 빨간 광역 버스를 이용하지만, 원래는 보라색 시외버스가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없이 오산시청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만, 버스들이 내려주는 곳은 달라졌습니다. 전의 글에서 말했듯이 빨간 버스는 신논현, 강남, 양재에 사람을 내려주지만, 예전 보라색 버스는 오직 한 곳 남부터미널에만 사람을 내려주었습니다. 가끔 양재를 경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남부터미널이 종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엔 서서 가야할 지 모르는 지하철 1호선보다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자주 방문했던 남부터미널은 2011년 5300번 버스가 생긴 이후 거의 방문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주 방문했던 기억만 가득한 그곳들은 이제 더는 제게 서울의 입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남부터미널역을 방문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부터미널 근처에 예술의 전당이 있기 때문이었죠.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없고, 대부분 한가람 미술관에 전시회를 보러 갔습니다. 교양을 이것저것 쌓게 해주시려던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갔던 기억들은 남부터미널과 함께 였지만, 그 이후 혼자 한가람미술관을 갈 때는 5300번을 타고 신논현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역으로 왔습니다. 중학교 즈음 가끔 미술관을 혼자 갈 때면 아직까진 익숙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미술관을 향해 발걸음을 옯기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서울의 입구라는 이미지는 없어도 남부터미널이 과거의 그리움의 장소가 아닌 현재의 익숙함의 장소였습니다.


처음 남부터미널역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친한 친구가 ‘러브라이브’라는 애니메이션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미나미 코토리’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에 간다니까 남부터미널 옆 국제전자센터에서 피규어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런 이유로 중학교 때 이후 처음 남부터미널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늘 친숙하고 익숙했던 남부터미널역은 그때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출구 위치가 달라 보였고, 화장실 위치도 예전과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변한 건 없었는데 말이죠. 분명 본 것들이지만, 뭔가 다른 기분. 알고는 있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데면데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에 한가람 미술관을 한 번 방문할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커서 보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그런 느낌이 남부터미널을 지나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20대에도 남부터미널역을 방문할 일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한가람 미술관을 몇 번 더 방문했고, 예술의 전당 옆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에 있던 친구와 만나기 위해 남부터미널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현재의 남부터미널역이 주는 이미지보다 과거의 남부터미널역이 주는 이미지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남부터미널의 낡은 흰색 벽을 바라볼 때면 그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 때문에 과거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던 저의 어렸을 적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30분 정도 앉아 있는 동안은 남부터미널의 돌바닥과 돌벽에서 알 수 없는 그리운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마저 하고 있었습니다.


남부터미널이든 남부터미널역이든 과거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도 사람들이 꽤 이용하는 곳입니다. 이제 저희 집 앞에서 남부터미널까지 운행하는 노선은 사라졌지만, 오산역을 거쳐 남부터미널로 가는 노선은 M5532라는 번호를 달고 새로 운행 중입니다.(집에서 오산역까지가 꽤 거리가 있고, 배차가 좀 적은 편이라 저는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공간의 시간은 흘러 현재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제게 남부터미널의 이미지는 과거에 멈추어 있습니다. 엄마 손 잡고 동생과 함께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마냥 즐겁던 그 때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일까요? 좀처럼 덮어 씌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행에서도 남부터미널역의 현재는 바라보지 못하고 그 이전의 과거 만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언제든 이 역을 방문한다면 늘 제 마음에는 그립고 아련한 향수가 가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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