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남

신논현역

by baekja


강남은 여전히 저에게 부담스러운 곳입니다. 화려한 불빛들, 깔끔하고 높은 건물들, 넓은 차로, 많은 사람들. 도시보단 시골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대도시보단 소도시가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제게 영 정감이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높은 물가를 가진 서울에서도 더욱 높은 물가를 가진 이곳에서 술을 먹을 일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남역 또한 별로 찾지 않게 됩니다. 넓은 역의 크기, 빼곡히 사람들이 몰려드는 승강장. 발 디딜 틈도 없는 차량. 목표한 곳이 강남역과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 저는 절대 강남역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강남역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강남을 자주 오기는 합니다. 강남에 무얼 하러 오지는 않고, 집 앞에서 타는 5300번 빨간 광역 버스가 강남에 저를 내려주기에 강제로 강남의 땅을 자주 밟게 됩니다. 하지만, 강남이 목적지인 경우는 거의 없기에 지하철을 타고 강남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때 5300번 버스가 가장 먼저 저를 내려주는 역인 신논현역을 이용합니다.


신논현역은 9호선입니다. 최근에 신분당선으로 환승 가능해졌지만, 저는 이용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이번 여행에서 저는 자연히 신논현역의 9호선 승강장을 택했습니다. 신논현역은 상행과 하행 승강장이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승강장에서 급행과 완행을 탈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많은 쪽이 급행이고, 사람이 없는 쪽이 완행입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6량밖에 안 되는 9호선은 사람이 미어터집니다. 이래서 평소에는 늘 빠르게 가는 것을 선호하며 급행을 타는 저도 출퇴근 시간에 움직여야 할 상황이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완행을 탑니다. 여의도와 강남을 가장 빠르게 잇는 9호선의 사람이 적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신논현역에 여행을 하러 도착한 것은 아침 11시경이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별로 없더군요. 사람이 많지 않은 승강장이지만, 벤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승강장 구석의 바닥에 앉고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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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찼지만, 못 앉을 정도는 아니어서 기둥에 기대고 편히 앉았습니다. 열차가 서는 지점은 아니어서 사람들은 구석 쪽으로 오지 않았고, 언뜻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제 행위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제 옆으로 가장 가까이 왔던 사람은 청소 노동자 분이셨습니다. 조용히 먼지를 닦고 대걸레를 청소 수레에 넣어 떠나시는 뒷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역이 어떻게 깨끗하게 유지되는지를 묵묵히 말하는 듯했습니다. 문득 깨끗한 신논현역의 바닥을 보자 밤과 아침의 신논현역 근처 거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밤만 되면 온갖 이상한 홍보물들로 더러워진 거리가 아침이면 늘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 많은 종이들이 사라진 것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 모두가 잠든 시각 그 종이들을 전부 치우기 위해 늘 노력했을 미화원 분들이 깨끗한 거리의 모습 뒤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깔끔한 역의 승강장과 세련되고 깨끗한 강남의 거리 뒤에 숨겨진 땀방울들이 거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도시의 깨끗한 미관 이면에 자리한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삶 또한 생각보다 신기한 방식으로 강남과 얽혀 있었습니다. 세련되고 깨끗하고 정갈하나 차가운 업무적인 느낌을 강남이 제게 주기는 하지만, 정작 제가 강남에서 쌓아 온 추억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가득하고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소박한 추억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닭갈비를 구워 먹고, 고기 무한리필집에 가서 고기를 배 터져라 먹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500원 짜리 동전을 넣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던 삶의 냄새가 진득하게 느껴지는 추억들이 많았습니다. 혼자서는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교보문고에 방문해서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하며 눈으로 사고 싶은 책들을 담고, 가끔은 눈에 확 띄는 책을 골라 사오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술 먹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제 평범한 삶은 역설적이게도 거대한 8차선의 강남대로와 이 주변 일대를 저와 연결해주는 신논현역과 함께했습니다.


여전히 강남은 제게 부담스러운 장소입니다. 높은 물가와 거대한 빌딩들, 쉬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들까지.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강남에서 쌓아온 추억들은 거대하고 속도가 빠른 것들이 아니라 시시콜콜하고 느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강남의 거대한 움직임 밑에는 사람 하나하나의 평범한 삶들이 쌓여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논현역 승강장 구석에 편안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위치한 이 장소가 마냥 기계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도심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도심과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이루어지는 곳,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공간이죠. 조금은 어색하고 더 넓은 2호선 강남역은 제게 있어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거대하고 세련된 강남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그 2호선 강남역이 포함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강남은 제 발길이 자주 닿았던 신논현역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만이 가지는 제 삶에서의 강남의 이미지, 모두 신논현역에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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