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 버린 1년의 일상

수유역

by baekja


저는 강북구와는 연을 맺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는 마포구, 주로 노는 곳은 서대문구이고 친가와 외가도 서울에 있지만, 강북구에 있지는 않습니다. 유명한 미술관이 강북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더 강북구와 연을 맺을 일이 없지요. 하지만, 제 대학 생활 속 큰 이야기들에서 모자란 부분들을 찾아가다 보면 그 끝에는 강북구의 중심역이라 할 수 있는 수유역이 있습니다.


수유역과 저의 깊은 연은 제가 경기도장학관(現 경기푸른미래관, 이후로는 경기학사로 표기)에 살면서부터 맺어졌습니다. 도봉구에 위치한 경기학사는 수유역까지 데려다주는 마을버스인 도봉02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습니다. 또한, 1.8km 정도로 걷기 좋아하는 제가 적당히 걸을만한 거리라 경기학사를 갈 때는 보통 수유역을 이용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쌍문역이 걸어가면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터라 알게 되고 난 후에도 수유역을 더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경기학사에 살았던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의 1년간 수유역은 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처음 경기학사에서 수유역까지 등하교를 걸어서 할 때는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원체 좋아하니까요. 처음에 수유역까지 걷는데 선택했던 길은 광산사거리와 강북구청사거리를 이용하는 큰길이었습니다. 처음엔 이런저런 상가를 보면서 즐겁게 걸었지만, 이후에는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워서 우이천 쪽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천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수유역까지 향하는 두 길은 강북구청사거리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강북구청사거리에서 수유역까지는 번화가 그 자체입니다. 강북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그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수유역 근처의 번화가는 크기는 하지만, 강남의 그것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수유역 근처에 각종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고, 건물도 엄청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보문고, 볼링장, 맥도날드 등이 크게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을 중심으로 각종 체인 상점과 음식점, 술집들이 줄지어 골목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가끔 이 근처에서 친구들을 불러 놀고는 했습니다. 골목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거나 족발에 소주 한 잔을 걸치기도 하고,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사는 곳들이 수유역에 가깝지는 않다 보니 많이 마시지도 않고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골목골목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사실 수유역 근처가 번화가이기는 하지만, 그 번화가의 상점들을 이용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지요. 홀로 이곳을 다닐 때 주로 이용했던 것은 번화가의 상점보다는 길거리 음식들을 파는 포장마차였습니다. 특히 1500원 정도 하는 길거리 토스트는 제 아침이었습니다. 종이컵에 담긴 토스트를 호호 불면서 먹다 보면 승강장에 열차가 도착해있었습니다. 그럼 휴지로 입가를 닦고 종이컵과 휴지를 급하게 쓰레기통에 버린 뒤 열차에 올라타곤 했습니다.


하굣길에도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냄새는 늘 절 유혹했습니다. 물론, 술에 크게 취해 있을 때는 빨리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지만, 적당히 취해 있을 때는 그 냄새가 제 코를 강렬하게 찔렀습니다. 그럼 저는 참지 못하고 오뎅을 입속에 집어넣고 뜨끈한 오뎅 국물로 술 취한 속을 달랬습니다. 술이 부족한 날은 들어가는 길에 자그마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소맥을 털어 넣기도 했었습니다. 난방도 잘되지 않는 작은 곳에서 덜덜 떨면서 털어 넣는 술이 어찌나 잘 들어가던지 그대로 취해버린 채로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가끔은 야식이라면서 7000원짜리 야채곱창볶음을 사서 룸메와 나눠 먹기도 했죠. 제 등하굣길의 평범한 일상들이 수유역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일상들이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자 그 일상들 사이에 지루함과 힘듦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경기학사에서 수유역까지는 너무 멀었고, 수유역에서 학교 후문이 있는 이대역까지도 꽤 멀었습니다. 길은 이제 너무 자주 봐서 지루함만이 느껴졌고, 학교 근처에서 놀다 집에 오는 날은 하굣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은 승강장에서 시원하게 미끄러져서 바지가 다 젖어 등교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유역은 저에게 있어 눈에 띄지 않는, 더 평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2학년 1학기 이후 한 학기를 더 보내고 군대를 갔다 온 후 수유역을 한 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수유역을 가게 된 것이죠. 미술관에서 천천히 수유역으로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추억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수유역에 도착하자 그 지루함과 힘듦마저도 이제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앉아 있는 수유역은 이제는 꽤 어색했습니다. 4호선에서 내려서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까지 그 30분 정도가 무척 어색했습니다. 여러 번 와봐서 기억은 하고 있지만,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마음이 멀어져 버린 그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그리 어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수유역 근처에 있었던 1년의 일상을 떠올리면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추억들이 제 마음을 뒤덮습니다. 하지만, 더 이어갈 수 없었던 그 일상은 1년의 시간 안에 고착되어 있습니다. 유리 진열장에 깔끔하게 담긴 전시물처럼요. 보면 즐겁지만, 현재의 나와는 동떨어진 무언가 같습니다. 여행을 온 수유역은 제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모아둔 장소. 지금 나와는 관련이 없는 어딘가. 하지만, 떠올릴 때마다 마음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내 마음속 잊을 수 없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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