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역
어느 지하철의 종점에 내려본 적이 있나요? 집에 종점 근처에 있지 않은 이상에야 종점에서 내릴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종점에서 내려본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내린 종점은 오이도역이지만, 수인선의 환승을 위해 내린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종점이란 생각은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내린 종점은 오이도의 반대편인 당고개역입니다. 그래서 제가 ‘종점’ 하면 떠오르는 역은 당고개역입니다.
당고개역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적은 이번 여행이 처음이고, 전에 당고개역을 방문했을 때는 전부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하하하. 저는 1학년 2학기, 2학년 1학기를 수유에 있는 경기학사에 보내었습니다. 이 경기학사를 올 때 많은 경우가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한 후에 경기학사가 있는 수유역으로 오는데 4호선에 앉아 술에 취한 채 졸다가 당고개역으로 향한 것이 제가 당고개역을 방문한 유일한 이유입니다. 당고개역에 내려 택시를 타기도 하고, 다시 내려가서 하행선을 타기도 했으며, 어떤 날은 아예 일어나지 못해 열차가 차고지에 들어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수유로 향할 때 일어나 타고 온 상행열차를 계속 탄 채로 다시 수유로 향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어두운 밤에만 당고개역을 보았던지라 제 기억 속 당고개역의 외관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당고개역의 외관을 만나러 가는 길은 좀 설렜습니다. 기억이 흐릿한지라 지하 역사인지 지상 역사인지도 몰랐기에 4호선 창동역 즈음부터는 창밖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지루한 운행 끝에 당고개역에 도착했습니다. 당고개행 열차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렸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대로 역 승강장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4호선이 연장 개통되면서 당고개역은 종점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제 4호선은 서울의 북부를 넘어 남양주의 신도시까지 뻗어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내내 4호선의 종점은 당고개역이었기에 진접역은 어색하고 4호선의 상행 종점은 아직도 당고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별내별가람역으로 가는 진접행 열차를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당고개 위쪽으로 새로운 역들이 생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당고개역은 지상 역사였습니다. 매일 어두운 상황에서 도착해서 지하 역사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는 이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제가 살짝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상하다. 분명 멀쩡한 상태로 택시를 탔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죠. 오래된 기억이나 풍화되어 사라진 게 틀림이 없다고 저를 위로하고 지상 역사 창으로 밖을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멀리는 아파트가 보였고, 당고개역 근처로는 작은 주택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빨간 광역버스가 지나는 좁은 도로는 이곳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서울의 종점이기도 한 이곳의 모습은 높은 아파트와 낮은 주택들 사이의 어떤 경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아파트가 이어진 선의 종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역 양옆으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어디 산촌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지만, 그 사이사이 가득한 건물은 이곳이 도시임을 잊지 않게 했습니다. ‘서낭당(민속 신앙의 사당)이 있는 고개’라는 이름으로 역명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당고개역과의 제대로 된 첫 대면을 마치고 저는 승강장에서 내려왔습니다. 개찰구를 나와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반대편 개찰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반대편은 사람이 좀 더 적은 편이었습니다. 당고개역이 종착점인 열차가 많은 4호선 상행과 달리 4호선 하행은 당고개역에서 멈추는 열차가 없어 승강장에 사람이 없는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원래는 남양주 주민들이 서울로 향하기 위해 올랐을 이 하행 승강장은 조금 한산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상행 승강장과 비교되어 약간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안에 있는만큼 좀 있으면 개발될 것이라 생각하니 이 한산함마저 소중해졌습니다.
원래는 빠르게 사람들이 빠져나갔을 종점의 승강장은 이제 서울에서 경기도를 연결하는 역의 승강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4호선에서 서울의 종점이고, 제 삶 속에서 4호선의 종점입니다. 언젠가 4호선을 타고 남양주를 가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날이 오면 무척 어색할 것 같습니다. 당고개역을 넘어 어딘가로 향한다니. 당고개역에서 돌아 터널을 지나고 다시 아래쪽으로 가야만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세상은 계속 변하고 제가 그날 본 당고개역도 변하고, 그 주변도 전부 변하겠지요. 하지만, 그날 본 그리고 과거의 제가 느꼈던 4호선의 종점 당고개역은 제 마음속에 늘 남아있을 겁니다. 그 마음속 종점의 인상을 품에 안은 채 저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저의 종점, 당고개역에서 하행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