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휴식

여의나루역

by baekja

평일 오전에 찾는 여의나루역은 무척 어색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날씨가 무척 좋은 봄날에 이 역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정말 어색했습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니까요. 뭐 날씨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평일 오전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겠습니다. 날 좋은 주말이면 나들이객으로 넘치는 이곳은 여의도 한강공원과 가장 가까운 역입니다.


여의도 한강공원은 제가 다닌 대학에서 가장 가까운 한강공원입니다. 가장 가까울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제법 가까운 편에 속합니다. 걸어도 1시간 이내에 올 수 있으며 지하철을 탄다면 환승이 잘 된다는 전제 하에 10분 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이렇게 가깝다보니 놀만한 곳으로 많은 대학 선배들이 추천해준 곳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동기들과 함께하는 첫 봄소풍은 여의나루역 위의 여의도 한강공원이 되었습니다.


많은 동기들이 모여 봄소풍을 가던 날, 지하철 곳곳에 앉아 설렘을 가득 안고 여의나루역으로 향했습니다. 한강 밑에 위치하여 아주 깊은 지하에 있는 여의나루역의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의나루역 2번 출구로 나왔을 때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봄소풍을 하러 온 동기들은 다같이 모여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과자에 라면을 안주삼아 과일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단체 야외 술자리를 가졌던 그 날 이후 여의도 한강공원과 여의나루역은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깝다고는 해도 여의도까지 가서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불편했고, 돗자리까지 가져와야 했으니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언제 방문했는지를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잠시 멀어진 1,2학년 이후 정말 많이 방문했기 떄문입니다. 군 휴가 때도 몇 번 시간을 내어 갔었고, 군 전역 이후에는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마음이 잘 맞는 한 두명과만 같이 오니 굳이 돗자리를 챙길 필요도 없었고, 가볍게 맥주 한 캔 하는 장소로 변하며 불편한 장소가 아닌 편한 장소로 변하면서 여의도 한강공원을 안 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을 갓 전역한 이후 낭만을 말하며 깔깔댄다든가, 마음속 깊은 상처와 함께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든가하며 여의도 한강공원에서과 1년을 보냈고, 이후에는 고시와 취직얘기를 이어가며 한숨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의나루역은 그 이야기들 밑에 늘 있었고, 이야기를 시원하게 다 내뱉고 답답한 마음을 한강에 실어 조금 풀어내고 난 피곤한 육신을 편하게 집으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술과 진지한 이야기가 가득한 한강공원만 여의나루역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기분전환 겸 하는 산책에도 이 역은 함께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쐬고 싶어 산책을 택할 때 그냥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날도 많았지만, 걸어갔다가 지하철을 탄다든가,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걸어온다든가 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맑은 날, 비오는 날, 해가 뜨지 않는 밤 등 어느 날 시간이든 제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강을 보고 싶은 날이면 저를 그곳에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혹은 걸어오며 한강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안정시킨 저를 다시 쉴 수 있도록 집으로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여의나루 역에 현재 오는 목적은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조용히 친구들과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이나 산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이 많은 시간에 이 역을 찾는 경우는 별로 없죠. 하지만, 1년에 딱 한 번 사람이 많은 시간에 이 역을 찾습니다. 벚꽃 피는 시기, 햇빛 좋은 날, 윤중로부터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이어진 벚꽃길을 보러옵니다. 활짝 핀 벚꽃은 무척 화려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봄에만 맛볼 수 있는 화사함과 따뜻함을 제게 선사해줍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 신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청춘의 시작이 지나고 감상에 젖은 낭만과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진지함이 따라왔습니다. 그 사이에서 종종 마음의 평온을 찾기도 했고, 화사함과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은 기계처럼 움직이는 평범한 저의 삶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 줬고, 지친 마음에 휴식을 주었습니다.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꽤 가까이에서 저와 늘 함께한 이 공원, 그리고 늘 이 공원과 함께하는 여의나루역은 종종 제 삶의 휴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말합니다.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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