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안에 들어가서 사무동 2층을 가려는데 온통 공사판이라 길을 당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봐도 면접을 보러온 단정하고 멋있게 입고 온 여성분이 바로 보이는 2층 계단을 향해 가더군요. 그 모습에 홀린 듯 따라갔습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요? 그 모습을 보던 누군가가 거기 아니라 안쪽 건물로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재빨리 방향을 틀어 안쪽 건물로 향했습니다. 이때는 몰랐지만, 그때 외치신 것은 학예사님 중 한 분이었습니다.
안쪽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물을 나누어주면서 면접비를 받을 계좌번호와 인적 사항을 적도록 했습니다. 정말 좋다고 느꼈던 점은 국립제주박물관은 도내는 면접비를 안 주고, 도외는 5만원을 주는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도내 5만원 도외 10만원을 주더군요.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그냥 단순하게 보는 제 관점에서는 문체부는 짠돌이고 국가유산청은 후하고 너그러운 곳으로 느꼈습니다. 면접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는데 면접 5분 전에야 가쁜 숨을 고르며 도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뭔 여유인가 싶었지만, 그 이유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고, 복도를 조금 걸어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면접장에 몇 명이 있었던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인지라 이미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거든요. 첫 질문은 당연히 나올 법하지만, 면접 초보인 제가 간과해버린 질문이 나왔습니다.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순간 말 그대로 정지했습니다. 시간이 멈췄고, 공간이 멈췄으며, 가장 중요한 제 뇌가 멈췄습니다. 제가 이 박물관에 지원한 첫 번째 이유 ‘그냥 박물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돈은 벌어야 하니까’였죠. 이미 어떠한 꿈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마음 가는 대로 지원했는데 소개할 자기를 표현할 말을 찾아낼 리는 만무했습니다. 가까스로 몇 마디 말들로 가식적인 치레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말은 전혀 아니었으며 면접을 잘 봤다고 느낄만한 좋은 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망한 느낌이 잔뜩 들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봤나요? 가장 인상 깊은 유물은 뭐였나요?”
듣고 정말 멍해졌습니다. ‘여긴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지 국립고궁박물관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사실 국립고궁박물관의 부속 박물관 성격을 갖고 있더군요. 하하. 내가 그걸 알 턱이 있나. 그래도 안 가본 건 아니니 말을 돌려가며 시간을 끌고 어차를 내세워 창덕궁의 희정당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인상적이었다며 말을 마무리했습니다.
가장 답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질문은 “실록에서 재밌는 부분 하나를 선택해서 얘기해 봐라.” 였습니다. 정조 때, 정월대보름에 짚인형(제웅)에 푼돈을 넣고 사람의 이름과 생년을 적어서 길가에 버려 액막이를 하고 그것을 아이들이 주워서 용돈으로 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거를 한양부의 한 관리가 높은 분의 명령이라며 하지 못하게 금지해버렸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노발대발하며 백성들의 하나의 즐거움을 자기 맘대로 뺏었다며 그대로 벌을 내렸었습니다. 이 내용을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대답하면서 면접을 보는 와중에도 공부한 자기 자신이 다 뿌듯하더군요.
마지막 질문은 “평창에 와봤느냐? 와봤다면 어디를 가봤고, 어떤 점이 인상 깊었나요?”였습니다. 재작년에 평창 봉평에 와서 이효석 문학관을 방문하여 효석문화제를 즐겼던 경험이 있었기에 다행히 어느 정도 잘 얼버무릴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 대답하고 나니 ‘당최 내가 평창에 대해 아는 게 뭔가?’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긴장 속에서 면접을 마무리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다 빠져나간 후엔 ‘아. 망했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다시 올 것 같지도 않아서 이왕 온 김에 버스 종점인 산속 깊은 상원사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상원사가 월정사보다 훨씬 고즈넉한 산사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산의 사면은 온통 하얀색 눈으로 덮여 있어서 3월 중순의 설경은 정말 볼 맛이 났습니다. 약하게 나는 향냄새와 인자하게 웃고 있는 문수보살님은 제 걱정을 덜어주었죠. 다만, 세조가 여기까지 와서 목욕을 하고 갔다는 말에 수행원들이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갔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대산의 명찰 월정사와 상원사까지 다 보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친구를 앞에 두고 술을 들이키자마자 면접이 망했다는 생각이 미친 듯이 사무치며 친구 앞에서 한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의 스탠딩 코미디쇼 내내 친구를 웃겼습니다. 나의 불행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남의 불행을 더는 것, 그것이 바로 일류겠지요. 그 웃음소리 덕에 저는 집으로 돌아와 걱정을 잠시 내려두고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짜 일류였습니다. 며칠 뒤 면접 합격자 발표가 나고, 제 이름이 없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는 도저히 웃음이 안 나오더군요. 아, 처음엔 올해 망했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헛웃음이 나오긴 했습니다. 길고 긴 절망이 손을 뻗어 저를 다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고, 길이 막혀버린 듯한 불안감에 공황이 다시 터졌습니다. 다행히 무수한 공황 끝에 발견한 해결책들(영화 보기, 글쓰기)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마음의 불안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불합격 다음 날, 핸드폰으로 지역번호 033이 찍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희억 선생님 핸드폰 맞으시죠?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입니다.”
“네, 맞습니다.”
“앞의 합격자분이 포기하셔서 예비 합격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