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by baekja

누구에게나 첫 출근은 있습니다. 뭐 극소수의 사람들은 없겠지만, 논외로 하죠. 저는 제법 많은 첫 출근을 했습니다. 편의점 알바, 교보문고 알바, 중소기업 기획자 등. 그 다양한 첫 출근은 모두 떨렸습니다. 다만, 단 한 번도 첫 출근에 양복을 입고 가야 할 상황은 없었습니다. 편의점은 당연했고, 교보문고도 책을 나르고 분류하는 데에 양복은 방해였습니다. 중소기업은 5인 이하인데 양복까지 입으라 하면 솔직히 너무하다 생각합니다.


박물관 첫 출근. 뭔가 제대로 된 인턴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출근하는 첫 날. 저는 양복을 입고 출발했습니다. 집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그 정신없는 순간 속에서, 조금은 살이 쪄 조금 꽉 낀 느낌을 참아가며 양복을 입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어머니의 차를 탄 채 첫 출근을 했습니다. 눈은 여전히 녹지 않은 3월 26일 산골의 고요한 2차선을 달려 그렇게 처음 출근을 하러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누군가는 ‘설렘 반 기대 반’과 같은 말을 할지 모릅니다. 저는 이와는 다르게 부담 백배라는 말로 당시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 확신 없는 순간, 사무실 앞에 도착했는데 누군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8시 30분, 출근 30분 전 사무실은 너무 고요했습니다. 열어주신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었습니다. 열어주신 분이 저의 근로 계약과 관련된 행정 담당이셨고, 저는 가만히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앉아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3월 26일부터 9월 25일 제 계약서에 적힌 6개월. 평창에서 보내야 할 시간. 그것이 공문서에 적혔습니다. 직원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조그만 사무실(하지만 제가 여태까지 봤던 가장 큰 사무실)에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차자 행정 담당 분이 저를 인사시켰습니다. 인턴이 처음 온 날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박물관 도록을 줄창 읽었습니다. 하지만, 도록만 줄창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관개관이라는 큰 행사가 4월 30일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첫날부터 어렵지 않게 박물관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공사판인 어린이박물관부터 진열장이 비어 있는 상설전시실, 그리고 온통 어둠으로 덮인 기획전시실까지. 저는 그저 앞의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온습도계를 상설전시실에 설치하는 일을 할 때는 너무 긴장을 했는지 손의 습기로 온습도계를 한참 높여 놓기도 했습니다. 메뉴가 뭐였는지도 모를 점심이 지나고, 도록을 읽는데 관장님이 말씀을 거셨습니다.


“우리는 공사판을 계속 지나다녀야 해서 양복이 맞지 않아요. 내일부턴 편하게 입고 와요.”

‘예, 뭐. 아무도 차려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저도 느끼기는 했습니다만, 껄껄. 미리 말씀 좀 해주셨으면 참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이 1초쯤 스쳐 지나가고 그렇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그때는 복장을 크게 잘못 입었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끝나갈 때, 관장님이 제게 교육자료 복사를 시키셨습니다. 유물을 다루고 관리하는 법에 대한 교육자료였습니다. 복사 자체가 제겐 난관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대형 복합기 앞에서 딱 5초 멈춰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생각 속 괜찮아 보이는 방법을 골라 간신히 복사를 했습니다. 복합기에서 갓 나와 따끈따끈한 복사 잘 된 종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육을 들으면서 상상도 못했던 유물 다루는 일에 제가 투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턴한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제 입장에서야 제가 꿈꿔왔던 일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것이니 즐겁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가지고 첫 근무는 끝났습니다.


방호직 공무직 분의 차를 같이 타고 퇴근을 했습니다. 6개월 간 끝없이 저를 도와준 카풀의 시작이었습니다. 15분을 달려 집에 도착했고, 제 첫 출근은 그리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이 끝이 났습니다. 그 뒤로는 별 새로울 것 없는 100번 넘는 출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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