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는 것. 사실 저는 그 의미를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시원에서 산 세월만 1년 반. 나름 자취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기숙사도 오래 살았기 때문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조금 짧았었나 봅니다. 고시원은 사람들이 부대껴 사는 서울이었고, 기숙사도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으니 ‘고독’과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연고 하나 없는 지방에서의 ‘고독’은 도시에서의 ‘소외’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서울에서도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말할 수 없고,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줄 수 없는 도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소란 속의 침묵. 거기서 느껴지는 소외는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을 종종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불빛이 없는 평창에서 퇴근 후의 집을 마주했을 때의 지독한 고독은 떨어진다는 느낌이 아닌 이미 무저갱의 어딘가 모를 무한의 바닥에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외롭고, 외롭고, 외로웠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저는 제 연고가 되어줄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휴대폰은 편리하고, 먼 거리를 친구들과 이야기하게 해주었습니다. 허나 휴대폰 위에 떠 있는 말들은 허상일 뿐입니다. 그 말에는 표정, 분위기, 사람의 온기 그 무엇 하나 직접적으로 담겨 있지 않습니다. 몇 번의 카톡이 끝나고 느껴진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곳,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이곳에서 홀로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없는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왔습니다. 쉬는 날은 언제나 즐겁지만,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대관령 바로 밑 진부면의 혹한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3월 말 영하 10도. 문득 공인중개사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여기는 영하 15도부터 진짜 춥다 그래요. 그때부턴 세탁기 돌리면 안 됩니다.”
영하 15도, 아득히 낮은 숫자에 감조차 잡지 못했지만, 무척 춥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스비가 아까워 보일러를 틀지 않는 집 안에서 영하 10도의 강력한 바람을 상대하며 더욱 ‘춥다’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왜 이곳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릴 수 있는지 정말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3월 말. 아, 겨울은 상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이불 두 겹을 겹쳐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창밖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눈이 내렸습니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눈이 왔습니다. 누가 먼저 떨어지나 경주를 하듯 눈송이가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잿빛 하늘에서 내린 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하자 베란다로 나가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냥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제 내면의 고독보다는 눈앞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늘 6개월 동안 저는 베란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습니다. 일이 힘들든 외로움이 날 덮치든 눈앞에 보이는 해발 700m가 넘는 산들은 늘 그대로 있었고, 강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오대천은 늘 흐르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그렇게 조금씩 무뎌졌습니다.
눈이 그치고 날이 밝았습니다. 쨍한 해 아래서 진부면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널찍한 다이소, 하나로마트 두 개, 도서관, 피자스쿨, 옛날통닭집. 충분히 살만한 곳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전부 떨쳐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지낼 6개월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다시 평창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요? 늘 사람에 부대껴 살았던 도시 촌놈의 홀로서기는 그 마음가짐으로부터 새로이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