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첫 출장

by baekja

주말이 지난 월요일. 여전히 다른 인턴에게 받은 논문이나 보며 사무실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자리조차 입구에서 가장 가깝고, 내부에서는 가장 먼,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 솔직히 불편한 정말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그 와중에 사무실은 와이파이가 설치가 안 되어서 데이터 양이 적은 제게는 딴짓도 거의 불가능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뭐 오히려 제 상사인 학예연구사님들의 눈길이 바로 닿는 자리가 아니라서 좀 편하게 살았습니다.


가만히 어떻게든 지루한 티를 안 내려 앉아 있는데 오늘 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 회의 준비. 이것이야말로 인턴의 일. 드디어 일을 더 배우는구나 싶었습니다. 오후 회의를 위해 2층 회의실에 세팅을 하려는데 이런. 커피하고 물이 떨어졌군요. 사러 가야 한답니다. 후, 좋습니다. 가야죠. 그렇게 첫 출장이 결정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출장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재를 받아야하더군요. 그 전년도 5인 이하 사업장에서 대표님께 허락만 맡고 출장을 나갔던 옛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결재를 올리고, 관용차를 타고 10km 밖에 있는 무려 같은 면의 하나로마트로 향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회사를 벗어난다는 것.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는 것. 일하러 가는 것이지만, 장소가 바뀐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쑥 올라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로마트에 도착해 커피와 물을 확인하는데 물은 있었지만, 커피는 같은 종류가 없어 적당히 대체해서 샀습니다. 이 과정을 혼자 해냈다면 전 정말 대단한 사람이겠지만, 일단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장롱면허인지라 10km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누구와 함께 나왔을까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신설 기관입니다. 그래서인지 만성 인원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공무직 연구원도 없어서 이를 대체할 인턴을 6명이나 뽑으려 했죠. 안타깝게도 2명만 왔지만……. 학예 쪽도 문제지만 당연히 행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분의 사무관님과 한 분의 주사님이 평창군청에서 파견되었습니다. 사무관님과 출장 나갈 일은 거의 없고, 주사님과 자주 출장을 나갔습니다. 제 첫 출장도 당연히 주사님과 함께였습니다.


주사님과의 출장을 끝마치고, 회의실 세팅을 했습니다. 의자와 책상을 회의실에 맞게 세팅하고, 펜트레이에 플러스펜과 연필, 지우개, 물과 커피를 알맞게 올려두면 끝. 쉬웠지만, 뭔가 정말 인턴다운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습니다. 공공기관에서는 외부와의 조그만 행사도 기록해야 하기에 박물관 내부 인원 2명, 외부 인원 4명만 하는 회의임에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수가 행사 및 교육 담당 학예사이기에 그 담당은 저였습니다. 사진을 찍고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것마저도 어색했지만, 무언가를 잘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당시 회의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던 회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대산에는 크게 세 개의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먼저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산하 국립한국자생식물원, 국립공원공단 산하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여기에 오대산의 실질적 주인이라 볼 수 있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까지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 ‘오대산권역회의’입니다. 각자 다른 소속의 기관들이 오대산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서로 공조하고자 이런 회의를 열고 있는 것이죠. 제가 들어가 볼 일은 없고, 가끔 저희 박물관에서 회의하면 세팅하는 정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회의의 실정을 알고 나서 참 많은 일들이 알지 못하는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 저는 여전히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인턴이 끝날 때쯤 시원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마음 졸여 가며 해야 했습니다. 별일 아니라며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사건들에도 맘 졸이며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어리숙하고 어색하기만 한 첫 출장은 후에 달에 몇 번씩 출장을 나가도 별 거 없다는 듯 익숙해졌습니다. 평창에서 벗어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들을 당시는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 모든 것이 어렵고, 모든 것이 어색한 그 순간을 쌓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버텨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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