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Excel), 마이크로소프트 사(社)에서 만든 스프레드시트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으로 표현).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해 본 대부분의 분들에게 이것은 친숙합니다. ‘뛰어나다.’ 라는 뜻처럼 업계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앱은 많은 경우 문서 작업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제가 인턴을 했던 박물관에서도 엑셀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엑셀에 제대로 수식조차 넣지 못하는, 적어도 엑셀에 한해서는 문맹입니다.
사람의 눈을 편하게 한다는 초록색. 하지만, 엑셀의 초록색은 모든 회사원들의 PTSD를 불러일으킵니다. 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준 혁신적인 앱이기는 하나 그만큼 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직사각형의 배열, 그 직사각형에 들어가는 숫자들의 행렬, 그 모든 것들을 순간적으로 계산해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함. ‘효율’이라는 단어에 엑셀만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겁니다. 가장 이성적이고, 감정적이지 않으며 깔끔하고 단순한 방식을 통해 답에 도달하는, 근대의 인간 주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장 잘 형상화한 도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엑셀을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세상에 그렇게 물으면 그와는 다른 대답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엑셀 프로그램 세계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적어도 한국의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입력값을 효율적으로 집어넣어서 최대한 단순한 수식으로 계산해내 출력값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대회.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지만, 주제는 완전히 새롭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게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방법을 최적화하라.” 효율과 최적화는 분명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단어지만, 주된 소재가 게임이라니. 효율과 최적화 속에 숨은 창의성. 엑셀을 효율과 최적화로만 생각했던 것은 사실 그렇게 바라봤던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창의성 있는 엑셀, 좋은 말이고 관점을 뒤트는 말이지만, 적어도 제 삶과 관련 있는 말입니다. 제게 있어 엑셀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때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돈과 효율에 예속된 답답함을 상징하는 도구죠.
엑셀을 처음 사용해야 했던 것은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정말 뭘 모르는 데도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엑셀에 일정을 정리해 보고서를 만들던 제가 생각납니다. 거의 매일 엑셀을 만졌지만, 복잡한 숫자 계산은 할 일이 없었기에 수식을 만들 일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죠.
처음 엑셀을 만지기 시작하니 자연히 엑셀을 계속 만지는 상황이 등장했습니다. 행사, 교육 담당 학예사님 밑에서 인턴을 하니 역사를 공부하기 보다는 엑셀과 더 가까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맨 처음 맡게 된 것은 전관개관 포스터 및 초청장 명단 정리였습니다. 포스터는 유관 기관 및 사학 관련 학과에 보내는 것으로 전부 인터넷을 통해 주소를 찾아 적어 넣었습니다. 하루 좀 넘게 엑셀만 바라보고, 인터넷만 뒤지다가 끝이 났습니다. 정말 눈이 빠질 것 같더군요. 이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초청장 명단을 정리했습니다. 국회의원부터 관련 지역민까지 1000명 가까운 사람의 명단을 정리하고 나서야 업무가 끝났습니다. 3일 내내 엑셀만 보면서 명단 정리를 하는데 일이 있어 심심하지 않아 좋았지만, 그렇다고 막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좋아하지 않는 엑셀, 정말 학을 떼고 싶었죠.
그 후에도 엑셀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 사용할 일이 있었습니다. 전관개관 이후로 같은 년도에 청년 국제 교류 프로그램, 학술대회와 같은 굵직한 행사들이 있었고, 이전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했던 사례가 없거나 조금 다른 점이 있어 다른 기관에서 했던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라장터에 들어가 하나하나 사업계획서를 뒤져가며 엑셀에 정리해내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이후에 행사를 했던 방식을 생각하면 그렇게 필요했나 싶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일한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뭐가 됐든 저도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고, 먹고 살기 위해서 사무직을 계속할 거라면 엑셀은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되겠지요. 지금은 모르는 많은 엑셀의 기능들을 배우고 알게 될 겁니다. 제가 엑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엑셀은 분명 편리한 도구입니다. 복잡한 업무를 깔끔하게 정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앱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엑셀을 쓰는 것이 꺼려집니다. 효율과 최적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회사’라는 기관과 먼 삶을 살아온 제게 엑셀을 배우는 것은 근대의 톱니바퀴 안으로 굴러들어가는 것만 같은 거북함을 줍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는 지금, 엑셀을 배우지 않는 것은 사실 귀찮음의 영역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엑셀에 대한 지금의 고민은 미래의 제가 어떤 모습이냐가 결정할 겁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제가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