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평창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넘어가는 길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입니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봉평장, 대화장과 함께 같은 권역의 5일장으로 묶인 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제가 살았던 진부면에서 열리는 진부장입니다.
평창은 인구수는 4만여 명에 불과하나 크기는 서울 2.5배로 무척 넓습니다. 그래서 평창 내에서도 권역이 갈립니다. 평창읍에서 대관령면까지는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거리이기에 진부면, 대관령면은 오히려 평창읍보다 강릉 시내가 가깝습니다. 이러한 거리 차이는 평창장과 봉평장, 진부장, 대화장의 권역이 다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근처의 장 중 대화장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서울 동대문 밖에서 대화장을 보라.’라는 말이 있었고, 대화 우시장은 소 200~500두가 넘어가는 큰 시장이었다고 하죠. 서울에서 영동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요한 중간거점이기에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봉평장이 가장 큽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후광을 뒤에 업은 봉평장은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의 시장으로 발전, 아예 2·7장이었던 5일장을 주말장에 가깝게 바꾸면서 현대에는 세 시장 중 가장 북적거리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지역 5일장은 물류의 중간 거점이라는 역할은 잃어버리고, 관광객이나 지역 주민들만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고 지역 주민이 많은 장이 규모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평장 다음은 진부장입니다. 일단 진부면이 인구가 평창군 내에서 가장 많으며(평창읍보다 많습니다), 오대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 자원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기에 관광객도 제법 찾아오는 편입니다.
진부면에 처음 이사를 오면서 진부장의 존재는 알고 있었습니다. 3·8장이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오후 세시면 장을 전부 접는 시골의 5일장 특성 상 휴일에나 가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휴일과 3·8장이 겹친 4월 13일,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놀며 시장을 기다리는데 이게 웬걸,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제법 많이 왔습니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자고 일어난 오전에도 조금씩 진눈깨비를 날렸습니다. 강한 바람과 동반한 진눈깨비는 막 자고 일어난 제 볼을 계속 때렸습니다.
날씨가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겠습니까? 관장님이 업무하다 잠시 쉬면서 먹으라고 사다주셨던 튀김집은 오지도 않았고, 빼곡해야 할 노점 천막은 듬성듬성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정말 반가웠던 것은 순대였습니다. 놀랍게도 진부면에는 도시에는 찾기 어렵지 않은 포장마차 분식집이 없었습니다. 비싼 돈 주고 떡볶이 전문 체인점이나 순대국밥 전문점에서 사다 먹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근데 5일장에는 그 포장마차 순대가 있었습니다. 1인분에 6천원(양은 좀 많긴 합니다)이긴 하지만, 제가 진부에 와서 손꼽아 찾던 그 오아시스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입김을 내뱉어 가며, 추위에 떨어가며 산 순대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다음 5일장을 무척 기다리게 만드는 맛이었죠.
그 다음 장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일찍 왔습니다. 4월 23일, 예비군과 겹친 날. 오후 예비군이었던 저는 바로 오전에 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진부면에서는 찾을 수도 없는 꼬치 오뎅을 입에 한가득 물고, 김밥 튀김과 만두 튀김을 양손에 가득 들고 돌아올 때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먹이기 위해 월급날 치킨 한 마리를 고이 포장해 사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어디있냐고요? 굶주린 제 배가 아들이죠 뭐.
그 이후로 종종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왔습니다. 옷이나 화분, 각종 생필품들도 팔았지만,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깻잎무침과 같은 반찬거리, 새우젓과 같은 젓갈, 시장 족발 등 정말 아주 집요하게 6개월 동안 먹을거리만 샀습니다. 맛도 괜찮았고, 가격도 좋았지만, 늘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뭐랄까,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그것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진부에서 다양한 것들을 먹고 싶었던 저는 속으로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렇게 추운 4, 5월이 지나고 평창에도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7월부터 야시장이 시작된다는 현수막이 걸렸고, 이번에는 어떤 먹을거리가 있을지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7월 초 처음 찾은 야시장에는 큐브스테이크, 돼지고기 튀김 등 진부에서 평소에는 맛도 보지 못할 산해진미가 가득했습니다. 돼지고기 튀김을 처음 집에서 사와 먹을 때 그 기분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아, 이게 사람을 홀리는 튀김의 맛이지. 도시의 맛이다!
야시장의 목적은 관광객들에게 먹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함인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야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지역주민들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맥주와 함께 맛보며 즐기고 계셨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네 초등학생들이 모여 랜덤으로 곡을 틀면 곡에 맞는 춤을 추는 대회를 봤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1대1 대결을 할 때는 서로 편을 갈라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이 진짜 지역주민의 축제를 보는 것 같아 뇌리에 박혔습니다.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와 붉은 노을을 먹어가는 검푸른 저녁 하늘,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을 몰아내는 화려한 전구들 아래 왁자지껄한 말들. 그리고 그 모든 분위기를 담아 제게 전해주는 선선한 바람까지 정겨움이란 단어가 가장 완벽하게 표현된 상황이었습니다.
5일장부터 야시장까지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이 아니기에 더욱 간절한 진부의 시장들은 제가 진부의 삶을 더욱 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이벤트였습니다. 진부면에서 맛볼 수 없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도시의 맛과 타지 사람은 느끼기 쉽지 않은 시골의 정겨움, 그 감각과 감정이 지금도 진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마음에 사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