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개관을 앞두고

by baekja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이곳이 박물관인지 공사장인지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공사로 정신없는 박물관의 첫인상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습니다. 박물관이라고 이름을 달아놨는데 계속 그런 상태로 있을 수는 없겠죠? 당연히 공사를 마무리하고, 전관개관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일단 국가유산청 소속의 박물관입니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국립기관인 박물관이란 소리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실록과 의궤를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전시하고 보존, 연구하는 기관. 사무실 인원 10명 남짓, 그 외 모든 인원을 합쳐도 20명이 될까말까 한 작은 박물관치고는 걸린 것이 많았습니다. 공무원은 정규직을 뽑는 순간 정년 보장이기에 정규직을 많이 뽑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턴을 많이 뽑았고,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평창이라 원하는 인턴 수를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사무실은 정규직을 제외하고 기간제 연구원 2명, 인턴 2명이었습니다. 인턴은 6명을 뽑으려 했지만, 그렇게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관개관 1달 전부터 야근을 안 하시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일은 많고, 사람은 없습니다. 경력 하나 없는 저는 그렇게 이것저것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제 주업무는 행사 및 홍보 보조였습니다. 행사의 주 진행은 학예사님과 협력업체가 해주시기에 그 밑으로 딸려오는 잡다한 업무를 하면 되었습니다. 할 일이 딱히 없을 때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영상 촬영 및 사진 촬영이었습니다. 그 흔한 삼각대도 없어서 끌차에 박스로 거치대를 만들어 영상을 찍었습니다. 그마저도 각도가 안 좋거나 흔들렸다고 다시 찍는 일이 많았습니다. 다만, 영상실의 사진은 제법 잘 찍어서 리플릿에 실리기도 했으니 기분이 썩 좋았습니다.


인터넷이 핸드폰으로도 된지 한참 지난 지금, 박물관의 인터넷 홈페이지 또한 필수입니다. 전관개관을 하면서 원래 있던 홈페이지를 뜯어 고치는데 홈페이지 전체의 문제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정말 박물관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세세하게 살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볼 게 정말 많더군요. 수정사항만 한 20개를 갖다 드렸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 나온 홈페이지는 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수막 설치도 했습니다. 제가 현수막 설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현수막 설치를 할 위치를 세었습니다. 진부역과 진부면 중심지 근처의 현수막 설치 위치를 세고, 박물관에서 월정사까지 있는 현수막 거치대 개수를 셌습니다. 박물관에서 월정사까지 현수막 거치대 셀 때는 제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학예사님의 애착 인형 마냥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저것까지 다 센다고?’ 하는 생각이 정말 크게 들었습니다. 지금은 전관개관 현수막을 다 떼버려서 찾을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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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개관을 앞두고는 강당을 세팅해야 했습니다. 사무동 복도를 가득 메운 의자와 책상을 빼내어 펼쳐 강당에 전부 세팅을 했습니다. 오전에 힘을 다 빼고 점심 먹고 쉬고 있는데 바로 다음 일이 왔습니다. 내일 귀빈에게 줄 선물을 포장해야 하더군요. 개수에 맞춰 100개가 넘는 선물을 포장하는데 거의 다 했을 즈음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선물의 구성이 달라졌다면서요. 아, 정말 눈앞이 캄캄했지만, 모두의 도움으로 정말 다행히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일을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한 달이 넘게 준비한 전관개관식이 내일이었습니다. 저한테는 한 달이 좀 넘는 기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의 반년을 준비한 전관개관, 그 중요한 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연하게도 다음날 8시 출근을 명받고 퇴근했습니다. 제 6개월 인턴 생활 중 가장 큰 행사가 펼쳐지기 전날 밤, 사실 크게 뭘 한 것도 없는 저는 내일 잘 해야지 다짐만 하며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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