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기 위해 해발 600m로

by baekja

기회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떨어진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하나의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국가유산청 청년인턴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제주에 가고 싶고 제주 역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넣었던 문체부 청년인턴과 달리 이번엔 지원 전에 고민이란 걸 해보기로 했습니다. 인턴 자리는 많았지만,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딱 두 곳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었습니다. 뭐가 됐든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었으니 제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최소 5번은 가본 곳이고,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완전히 처음 듣는 박물관이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의 중심부 종로구에 있었으나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강원도 끝자락 강릉 바로 옆의 산지 평창군 진부면에 있었습니다. 둘 다 주로 다루는 것이 조선시대사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 조건들을 가지고 고민해봤습니다. 제가 일을 해보고 싶은 박물관이 아닌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목표에 대입해서요.


결론은 생각보다 쉽게 났습니다. 일단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몰릴 서울은 피하자. 사람이 적어야 뭐든 해볼 수 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시원하게 적어냈습니다. 분야는 전시 및 교육 지원. 그리고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일단 붙여달라고.


제법 간절하다고 느꼈는지 서류는 붙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두 번 떨어져 본 면접. 두 번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실록과 엮어낸 공무원의 자세와 실록과 의궤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둥실둥실 떠다니던 생각을 말로 구체화하고, 어렴풋이 알던 지식을 확실하게 새겨 넣으면서 제법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전의 날, 3월 12일에 저는 오산에서 청량리로, 청량리에서 KTX를 타고 진부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 산을 올랐고, 어느새 귀는 먹먹해졌으며 산의 곳곳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귀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눈을 찡그리게 하는 하얀 눈부심은 이곳이 강원도의 산지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부역부터가 해발 500m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높은 곳에 이미 저는 와있었습니다.


진부역에 내리자 도시의 탁한 공기와는 다른 상쾌하고 맑은 공기와 서늘한 추위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역에서 1km 정도를 걸어 1시간에 한 번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10km를 가서 일단 박물관 근처의 월정사로 향했습니다. 적어도 근처에서 역사 유적지를 하나는 봐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어도 좋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월정사에 도착하자 이곳이 오대산이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지 눈이 쌓여 있는 곳에는 눈이 거의 사람 허리까지 쌓여있었고, 눈이 녹은 곳은 물과 흙이 뒤엉켜 진흙이 가득했습니다.


물론 저는 의지의 한국인이기에 진흙을 잘 피하며 월정사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멀쩡했지만, 안타깝게도 제 신발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롱패딩과 양복을 입은 채 구두를 벗어서 눈에 계속 비볐죠. 다행히 좀 깨끗해졌습니다. 아니, 사실 반짝였습니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나 서글펐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다시 구두가 반짝이는데 뭐가 문젤까요? 이제 면접만 잘 보면 되지. 마음을 안정시키고 박물관 옆 카페에서 면접시간까지 자소서를 보고 실록과 의궤를 공부하며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양복 매무새를 점검하고 세수를 한 번 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며 면접 준비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면접 시간이 30분 남았을 때 바로 짐을 챙겨 문을 닫아 놓은 채 개관 준비를 하느라 공사 중인 박물관 안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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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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