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병장

by baekja

이제 내 군생활에 다시는 없을 길고 긴 휴가 끝에 복귀하자 늘 보았던 정겹지만 짜증나는 풍경이 다시 내 눈 속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훈련을 한 후 생활관에 들어오자 생활관원이 거의 전부 바뀌어 있는 것이 일단 가장 놀라웠다. 내 방이 더 익숙해졌는지 생활관의 침대는 오히려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색해졌으며 글을 쓰고 있는 사지방(PC방)에는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기가 가득해 신경에 거슬린다.


이러한 어색함과 불편함 속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모자와 약장에 새겨진 작대기 4개가 아닐까 싶다. 이미 전역해버린 사람들이 달면서 즐거워하던 그 작대기 4개짜리 약장은 부대에서 내가 달 수 있는 가장 많은 작대기 수이기에 전역에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병이란 소리가 익숙해져 나를 보자마자 후임들이 부르는 ‘병장’소리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기분이 막 들뜨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굳이 말하자면 좋은 쪽이겠다. 어떤 선임은 병장을 달았을 때 엄청 신난다고 했었고 어떤 선임은 그저 그렇다고 했는데 그저 그런 쪽인 것 같다. 일병 때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병장인데 어떤 면에서는 허탈하기도 하다.


사실 일병 때는 병장이 되면 군생활이 아주 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상병의 절반쯤이 지나자 병장이 되어도 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위에는 너무나 편하고 친한 선임들밖에 없었고 후임들은 짬 찬만큼의 대우를 해주고 있었기에 내가 무엇을 더 원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병장이 된 지금도 ‘무엇을 더 누리고 있나?’를 생각해보면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계급이 올랐을 뿐이다. 말이 달라졌을 뿐이다. 시간이 더 지났을 뿐인 것이다.


그래도 자잘한 좋은 점은 꽤 있는 것 같다. 월급이 정말 조금이나마 늘었다. 주 60시간 이상을 일하고 월에 40만원을 받는 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쨌든 삼만 원가량 늘기는 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기에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략 700일 정도 되는 군생활에서 163일 만이 남았다는 것은 나에게 행복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마치 길고 긴 터널의 끝에서 빛이 보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걸 나만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체감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간부님들도 이제는 병장을 단 것을 보고 전역이 얼마 안 남았겠다며 인사를 건넨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좀만 더 버텨보자는 의지가 생긴다.


병장이 되고 나서의 허탈함 그리고 자잘한 즐거움들이 지나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건 걱정이다. 잠시나마 사회에서의 나를 잊은 상태로 시간만 지나면 계급이 올라가고, 월급을 주며, 숙식 제공을 다해주는 방패막이가 사라진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전역은 즐거운 일이지만 자유에는 늘 책임이 따르듯 전역 후의 일들은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오로지 나의 몫이기에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와서 나는 사회에 나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가장 많이 한 건 역시 운동이다. 운동은 생각 없이 하기 좋아 늘 꼬박꼬박 챙겨 해왔고 전보다는 근육이 붙은 것 같아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많이 한 것은 독서였다. 읽은 책의 권수를 셀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나름 이것저것 지식이 쌓이기 시작하자 여기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청소를 한 것도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 집에 가서 청소를 하자 어머니께 잘한다는 소리를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리를 썩 잘하는 성격은 안하지만 이젠 집을 쓰레기장을 만들지 않을 자신은 생겼다. 그리고 한 3달 전쯤부터 시작한 글쓰기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이 헛헛해서 시작한 글쓰기는 근 3달 간 나의 무료한 군생활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긍정적인 것만 말하기엔 역시 반성할게 너무나 많다. 운동은 꼬박꼬박 하지 못해 생각보다 근육이 많이 붙지는 않았으며, 독서는 목표한 만큼의 반도 못했고, 여전히 내 자리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글쓰기 또한 아직 군생활 내에 쓰기로 목표한 만큼은 쓰지도 못했다. 군생활의 마지막 계급에 와서 내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병장이 되면 사실 별 느낌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기대감만큼이 아니라는 허탈감 진급함으로써 얻는 작은 이득에 대한 기쁨. 여태까지 해 온 것들에 대한 보람. 그리고 처음 목표할 때 만큼에는 닫지 못했다는 아쉬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아직 전역은 상당히 남았기에 아쉬움을 보람으로 더 만들 수 있고 전역이 다가오면서 기쁨이 더해지겠기에 병장은 아직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내 인생 단 한 번의 군생활에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무게감이 괜스레 내 어깨를 짓누른다. 조금은 버겁지만 그래도 ‘병장의 무게감은 이런 거겠지.’ 하며 훌훌 털어 넘기고 조금 남은 군생활을 좀 더 보람차게 보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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