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와 자릴 잡고 앉는 순간, 가방에 걸쳐
들고 온 가디건이 보이지 않았다.
오던 길에 흘렸나 보다. 가방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두고 다시 오던 길을 따라 걸었다.
내 옷이 길에 떨어져 있을 걸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길 위 어른의 옷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황당할 것 같다.
몇 걸음 걸으면 만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설마 개똥 위에 떨어져 있진 않겠지...
오던 길의 청결상태를 떠올려봤다.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런데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집 가까이 까지 왔다.
누군가 그새 주워갔을 수도 있을까, 아니면 혹시 가디건을 처음부터 안 들고 나온 건가, 무슨 정신머리인지..., 갑자기 기억이 분명하지가 않다.
그냥 카페로 돌아갈까 하는 순간 머리에 가디건 가격이 떠오른다. 젠장... 좀처럼 흐르지 않는 땀이 났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기어코 집까지 가서 확인을 하자. 결심을 하고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그러며 거의 집 근처까지 오자, 아파트 우리 동 입구 도로 위에 시체처럼 내 가디건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하... 차가 밟고 다니진 않았겠지... 내가 정신머리가 없는 게 아니고 가방이 미끄러웠다, 가디건은 그보다 더 미끄러웠고.
누구에게 하는 건지 짜증도 냈다가 변명도 했다가 그러며 그 길을 다시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사람의 감정 사이에도 어떤 상하관계가 있다면 다시 돌아온 사람보다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듯하다.
떠날 수 있는 사람. 돌아온 후에는 상대를 정의하는 내 마음이 그랬다.
더구나 그 사람이 떠날 때 어땠지?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보면,
책도 에필로그를 읽어야 비로소 한 권을 끝까지 읽은 것 같듯이 사람을 아는 일도 헤어지는 모습까지 다 봐야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별의 공식은 없겠지만 한쪽에서 안녕하면 다른 쪽에서도 안녕이라고 이별에 화답할 인사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의 정리까지야 각자의 몫으로 남겨놓더라도.
그런데 그 당연한 것 같은 일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이별까지 완벽한 인연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지...
꼭 이별을 해야 한다면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울 이들과 만나고 싶다.
살다가 그 이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하나 미운 감정 없이 그리워만 할 수 있는 이들과 만나고 싶다.
그래야 언제든 또다시 만날 날을 기꺼이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일이다.
가디건과는 겨우 이별을 면했다.
언젠가 내 손으로 의류수거함에 버릴 날이 오더라도 이렇게 생이별은 좀 마음에 걸릴뻔했다.
깨끗하게 세탁 후 정성 들여 말렸다.
여름 내 추운 카페 에어컨으로부터 날 지켜줄 옷이다. 게다가 예쁘다.
아직 이별이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