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거 안 하면 어때?!

나의 일상은 타인의 여행지

by 피카타임


몇 해 전 아는 동생이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가는데 시간이 20시간이 넘는다 했다.
결혼식으로 녹초가 될 텐데 그 먼 여정이 걱정이 되었다.
한편으론 신혼여행 휴가는 비교적 긴 편이니 평소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했던 곳을 가는 게 맞다 싶기도 했다.
어떻게 칸쿤을 갈 생각을 했냐 묻는 내게 그 동생은 ,

''언니, 요즘 칸쿤으로 신혼여행 가는 게 유행이야'' 했다.

신혼여행 후 그 동생은 끔찍했다고 했다. 오 가는 길이 너무 길어 고생스러웠다고. 가서도 피곤했고, 돌아와서도 여독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친구들이 한참 육아에 전념할 나이들이다.
어떤 친구의 sns에 필리핀 바다가 펼쳐진 사진이 올라왔다.
친구의 아기 둘이 바닷가 모래 위에서 노는 사진이 참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후 친구의 후기는 사진과 달랐다.
가는 비행기 속에서 아기 하나가 열이 나기 시작해 집에 올 때까지 열이 안 잡혀 고생했단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안 간다는 거짓말을 굳게도 해댔다.

한 지인은 육아 때문에 자긴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갔다 한다.
세상 모두가 잘만 가는 해외여행을 자긴 한 번도 못 간 게 말이 되냐 하는 얼굴 표정에 마치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듯한 회한이 묻어났다.

요즘은 각종 sns 때문에 여행은 자랑의 대상, 유행의 대상이자 사는 정도의 척도가 된 듯하다.
여행은 그 자체에 담긴 행복을 즐겨야 한다. 개인의 여행에는 타인의 그 어떤 형식의 개입도 있어선 안된다. 그 순간,
여행이 행복이 아니라 '일거리'로 전락해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강박, 열등감, 억지, 피곤... 그런 게 여행이 될 바에야,



여행, 그거 안 하면 어떤가.
안 해도 그만이다.

여행은 음식으로 치면 각종 양념 같은 것이다. 양념이 없다고 메인 재료가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물론 있으면 더 풍성해진다.
하지만 훌륭한 메인 재료를 두고 양념이 없다고 식사를 못하거나 그 식사가 쓸모가 없어질까.

여행을 할수록 날 짜릿하게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내가 행복해 마지않는 그 여행지는 누군가들의 일상 터전이다.
내가 삶에 신물이나 잠시 일상을 떠나자 여행길에 오른 후, 난 겨우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거, 그게 여행이다.

반대로 나의 일상 터전은 또 누군가의 여행지가 된다.
내가 늘 걷는 거리, 늘 먹는 음식, 늘 보는 풍경. 그것을 경험해보겠다고 타인들은 이곳으로 몰려온다.

삶은 맴을 도는 물살 같다. 내가 떠난 자리에 누군가가 흘러들어오고, 난 그들이 떠난 자리를 또 매우러 간다.

여행이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날 땐, 난 그 사실을 늘 상기한다. 나의 일상도 누군가의 여행지다.

그래서 난 여행 자체의 기쁨보단 대세에 휩쓸려 여행길에 오르는 모든 이들을 때때로 만류하고 싶다.
특히 자신이 어디가 불편한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아기들을 동반하고는. (그들의 용기는 분명 내가 본받아야 마땅하다.)

나 역시 sns에 넘쳐나는 타인의 여행사진들을 보면 늘 부럽다.
타인의 여행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걸어서 세계 속으로' 나, '세계 테마 기행'을 보는 정도의 마음이면 좋겠다.
보다가 즐겁고, 언젠간 나도 가보고 싶고, 혹여 살다가 그곳에 가 볼 기회를 영영 못 만난다 해도 누군가 대신 여행한 걸 보는 것만으로 만족이 되는, 딱 그 정도의 마음.

난 주말마다 집 옆 공원에 자주 간다.
그곳은 타지 사람들이 차를 몰고 소풍 오는 장소이다.
오늘도 공원을 산책하며 난 여행지에 있구나 한다. 유독 노을이 예쁘고, 노을에 비친 나무들이 찬란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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