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덜할 거라 했다. 아픈 것도 덜하고 무서운 것도 덜할 거라고. 몇 살 어른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어른이 된 지 이미 한참이 지났는데도 모든 게 여전했다.
9년 전 어느 날, 가슴에 이상한 멍울이 생겼다. 겁에 사로잡혔다. 특히 병원이 그랬다. 스무 살 초반 겨우 엑스레이를 찍으러 병원에 가서는 촬영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병원이라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조차 내 살갗이 아파와 끝까지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겁에만 사로잡혀 한주를 끔찍히 보냈다.
그러고는 의사 앞에 앉았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 끝에 조직검사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 바로 할 수 있어요. 국소 마취부터 하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의사를 바라보며 내 표정은 얼어붙었고, 물 담은 비닐에 구멍이 뚫린 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길로 병원을 도망쳐 나와버렸다.
결론 없는 검사를 마치고는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이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그와 결혼을 결심했던 날, 나는 할 말이 있다며 그를 다대포 바닷가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차 안에서 두 가지 고백을 했다.
하나는 엄마의 병명이었다. 엄마는 유방암이었고, 그건 유전적 요인이 강한 병이다.
아내 될 여자가 잠정적으로 안고 가게 될 위험을 말해줘야 했다. 내가 평생 어떤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지,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이 닥쳤을 때 본인이 감수해야 할 삶의 모습이 어떠할지에 대해 그가 한 번쯤은 생각하고 결혼을 하길 바랐다. 나는 매사에 마음의 준비가 중요했고, 그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난 아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유방암이었어. 그리고 아픈 오빠가 있었어."
말을 끝내고 그를 기다렸다. 긴장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가 잠시 멍하다가, "그게 무슨 고백거리야?" 라며 활짝 웃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농담과 수다를 이어갔다.
'맞아, 별일 아닐 수 있지. 그런데 분명 난 미리 말했다.'
난 그랬다. 상대가 미리 말하는 일에는 화가 나지 않으니, 종종 살면서 난 그에게 "나 미리 말했어."라는 말로 면죄부를 강제로 얻어낸다.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던 그 한 주, 일주일 내내 몸에 열이 났다. 심장이 계속 쿵쾅대고 있었으니 열이 나고도 남을 일이었다.
평소와 다른 나의 분위기를 감지한 그가 무슨 일 있냐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을 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말끝은 흐렸던 것 같다.
그 순간, 그의 눈물을 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당황하는 그의 행동들을 보았다.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그날의 고백이 생각났다. 아, 다대포에서 했던 나의 고백이 제대로 먹혔구나.
진단이 나온 것도 아닌데 그는 평소처럼 "별일 없을 거야." 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기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원했던 마음의 준비에는 이런 눈물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갈 일에 대한 실체를 보았고, 비단 그게 건강상의 문제뿐일까.
부부가 살면서 함께 겪게 될 모든 일이 결국 그랬다. 한쪽은 우는데 한쪽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쁨도 슬픔도 뭐든 두 배였다. 그리고 그건 가족 수와 비례한다. 상대를 몰랐으면 흘리지 않아도 됐을 눈물을, 고스란히 함께 흘리고 살아가는 것.
함께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또 마음은 슬픔 앞에 안정을 찾아가는 것.
살아보니 꼼짝없이 기뻤고, 꼼짝없이 더 많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