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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6.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귀농의 진입장벽3:이웃과의 화합

-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열다섯번째 이야기

  “그렇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에게 내 관리기를 빌려주기 싫네요.”

  나의 요청에 대해서 김대표님이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평상시에 그렇게 매몰찬 분이 아니기에, 그의 반응에 놀랐다. 나는 전년도에 김대표님의 소개로 하우스를 임대했었다. 시험 삼아서 이곳에서 토마토를 재배하기 위해서였다. 2024년부터는 구입한 내 밭에 하우스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을 또 다시 임대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임대해주었던 하우스의 주인 할머니가 멀칭 비닐을 설치하는 작업을 부탁해왔다. 김대표님에게 작업에 필요한 관리기를 빌려달라고 했던 이유였다. 


  2023년에 비닐하우스 백평짜리 한 동을 임대해준 사람들은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심한 당뇨로 인해서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분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농사는 오히려 할머니가 훨씬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도 역시 나이를 이길 수 없었다. 

  나에게 빌려줄 당시의 하우스는 천장 비닐이 거의 다 찢겨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토마토 지주줄을 걸 수 있는 중방 시설도 되어 있지 않았다. 천장 비닐을 덮고 중방 시설을 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했다. 나에게 다른 하우스의 절반 가격으로 빌려준 이유였다. 

  2023년 농사철에 접어들기 전에 나는 백 평짜리 하우스 지붕을 덮을 수 있는 대형 비닐을 사다가 덮는 공사를 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이 도와주어서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십개의 하우스 철봉을 사다가 중방 시설도 갖추었다. 이것만 해도 온전한 하우스를 빌리는 비용만큼 소요되어야 했다.   

  문제는 농사를 다 끝낸 후에 발생했다. 보통 하우스나 노지 밭을 임대할 경우 3년정도는 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군다나 내가 하우스의 천장 비닐과 중방 공사를 하면서, 임대료보다 훨씬 많은 돈이 투자되었다. 이런 경우는 적어도 몇 년은 내가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마침 ‘농촌에서 살아보기’ 후배들이 이 하우스를 임대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임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지을 생각이어서, 더 이상 임대하지 않을 거예요.”

  2024년에 한번 더 임대를 받으면 좋겠다는 나의 요청에 대한 주인 할머니의 답이었다. 내가 시설투자를 하는 대신 반 값에 임대를 하고 있어서, 노부부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인 듯했다. 하지만 이것은 관례에 어긋난, 그들의 이기적인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제일 분개한 사람은 김대표님이었다.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네요. 투자한 돈이 얼만데, 적어도 2년은 임대를 해주는 것이 맞지요.”

  이 하우스의 임대를 주선해준 김대표님이기에, 노부부들의 행동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이 적절했는 지 여부를 떠나서, 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노부부이기에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결정을 한 거겠지.’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귀농한 초보 농부의 입장에서 마을 사람들하고 척지기 싫었던 거였다. 

  “내 하우스에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멀칭해줄 수 있어요?”

  어느 날 나에게 주인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선뜻 기분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해주기로 했다. 노부부의 몸 상태가 이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려면 관리기가 필요했다. 김대표님이 관리기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해서,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 노부부는 이미 마을 사람들로부터 평가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톨이였다. 도시에 비해서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한 농촌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번 생긴 인간관계의 간극을 좁히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의 갈등이 오히려 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노부부의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이 쌓이면서, 그들을 마을에서 겉돌게 만든 것이다. 

  주인 노부부가 아닌 내가 마을 사람들과 갈등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금방 따돌림을 당했을 것이다. 고향도 아니고 귀농한 지 불과 1~2년밖에 안된 외지인이기 때문이다. 외면당한 외지인은 관리기나 각종 농기계를 빌리거나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다. 마치 중고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이 시골 공동체에서 많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많다. 농기계를 빌리는 것뿐 아니라 일손이 필요할 때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주변에 수시로 물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고, 그동안 농사를 통해서 수익을 만들어내기 어렵게 된다. 

  “이웃집이 보기 싫어서 이사를 가는 거예요. 사장님도 이곳에서 살면서, 이웃과 너무 깊이 사귀지 마세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할 때, 전 집주인이 나에게 해준 조언이었다. 집이 지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집이었기에, 집 자체의 문제로 매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웃집때문에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귀농이나 귀촌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과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도시와 농촌 공동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서로에게 피해가 가장 적게 가는 수준에서 이웃과 관계 맺기를 한다. 농촌에서는 이웃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시보다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은 귀촌인들은 이웃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살곤 한다. 서로 신경쓰기 싫은 탓이다. 도시에서와 같이 남에게 신경쓰기도 싫고 남이 나에게 신경쓰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귀농인은 다르다. 농번기에는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웃 농부들과의 접촉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힐 수도 있다. 때로는 조언을 받거나 협력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가끔은 이해충돌 사안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현명하게 풀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보다 훨씬 껄끄러운 이웃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원활하지 못한 이웃들과의 관계 맺음은 귀농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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