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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파더 Nov 08. 2024

좋은 심사역 VS 나쁜 심사역

심사역과 부실여신

심사 업무를 하다 보면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겁니다.


'어떤 심사역이 좋은 심사역인가?'


혹은


'어떤 심사역이 나쁜 심사역인가?'


실랑이를 벌이는 상대방이 내부 지점장 혹은 프런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심사역에 대한 평가는 항상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


경험상 지점장들은 승인건에 대해서는 절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맹점입니다.


대신 부결받은 건은 기억해 내는데, '저 심사역은 나한테 부결을 했어'라는 생각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때린 사람은 맞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맞은 사람은 때린 사람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걸 빨리 체득하는 약삭빠른 일부 심사역들의 행태입니다.


지점장에게 친절한 미소와 함께 승인장을 남발하고서 '영업점 입장을 배려해 주는 심사역'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겁니다.


전형적인 인기투표 형태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 과정에서 승진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런 행위들이 처음에는 넘어가지만, 결국 나중에는 좋지 못할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심사역은 좋은 심사역인가요? 나쁜 심사역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지점장에게 실적을 안겨주니 좋은 심사역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입장에서 손실을 끼치니 나쁜 심사역이 될 겁니다.


참고로 일전에 이야기했듯 Debt Side 채권이나 여신은 보통 Duration이 길어야 5년, 3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데 그 짧은 기간도 못 채우고 부실이 발생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신을 지원해 주고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부실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한 사람에게서 반복된다면?


이건 일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떠나,


앞에서 이야기 한 '인기 영합주의' 심사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전 직장에서 모 심사역 선배가 있었습니다.


나름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제가 해외 연수를 갔다가 부서에 다시 돌아가서 만나보니... 이 사람 언젠가부터 이상한 대출도 손쉽게 승인을 해주더군요.


참고로 여기서 똑똑하다는 말은 '얍삽하다'의 동의어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건 언젠가부터 지점장들이 해당 심사역에 대한 칭찬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사 접수하고 길어야 5일 이내면 승인장이 '뚝딱'하고 나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일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은데 이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연체 여신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하더군요.


아마 그때 한 3건 정도 (금액으로는 100억 정도?) 의사결정을 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부실여신으로 분류되었을 겁니다.


재밌는 건 해당 부실건 담당심사역이 모두 OO선배 심사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 사람에 대한 신상필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1~2년 고생은 했지만 결국 별다른 징계도 받지 않았어요.


눈물 작전이 통했는지 오히려 승진까지 했죠.


사람마다 타고나는 운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다 보니 더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후배들이 그 선배 심사역이 했던 행위를 따라 하게 된 것이죠.


'승인 저렇게 막 해줘도, 부실이 단기간에 생겨도 승진하는구나'


'지점장, 프런트랑 싸워봤자 나만 손해구나'


이런 걸 배우다 보니 어느덧 심사부의 기능이 순식간에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지만 혼자서 '의병처럼' 행동하느라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제가 자랑스러워했던 심사조직이 구성원을 잘못 관리해서,


'한순간에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위 글을 읽고 '단기간에 연체가 터지면 무조건 심사역 잘못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심사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물론 저도 제가 직접 지원한 여신이 단기간에 연체된 경험이 있습니다.


쓰라린 경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떳떳했던 것은 원인이 '저의 잘못된 판단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기 얻으려고 무리해서 일을 하다 그르치지는 않았다는 의미.


회사일이라는 것이 결국은 결과로 판단되지만 잘못된 의도를 가진 일들은 항상 그 끝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심사 업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글을 써 봤습니다.


정답이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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