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과 심사 실패
금융연수원 교육자료 작성이 거의 끝나갑니다.
지옥의 설 연휴기간을 거쳤습니다. 휴...
만들다보니 조금 욕심이 생겨 '과거에 심사 실패했던 주변 사례가 뭐가 있었지?'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기업형 산후조리원이라는 신세계를 연 'OO 산후조리원' 부도 사례.
법인명은 '와이OO 동그라미'로 기억되네요.
심심하신 분들은 기사 한번씩 찾아보면 어디인지 쉽게 파악 가능할겁니다.
저도 오래되긴 했지만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하나씩 끄집어 보겠습니다.
사실 산후조리원은 의외로 잘되는, 꽤 괜찮은 산업이었습니다.
출산률이 이렇게 급격하게 저하되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처음 이 회사는 산후조리원 시장에서 '브랜드'라는 컨셉을 잡고 시장에 나옵니다.
사업성 자체로만 본다면 그닥 나쁘다고는 볼 수 없는 구조.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주일에 몇천만원씩 하는 산후조리원이 강남을 비롯한 잘사는 동네에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당시 근무했던 은행에서도 모 심사역의 주장으로 해당 사업장에 여신을 지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이 기업에 마음이 안 갔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총자산에서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낮다는 점이 계속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 스타트업들의 재무 상황도 비슷하죠. (제가 이들에 대한 여신 지원, 즉 채권 투자를 지양하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또한 무형자산 가치도 너무 과했습니다. 대부분이 영업권.
카운터펀치는 영업비용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임대료였는데, 너무 높아서 신경쓰이더군요.
쉽게 말해 고정비 비용이 너무 높은 사업구조였습니다.
여기서 하나 이야기하자면 고정비가 높은 사업의 경우 가동률이 좋아야 비용이 커버가 됩니다. (중급회계 공헌이익 한번씩 보시길)
많이 돌려야 기본적인 비용을 넘어서는 이익이 생긴다는 말.
그러기 위해서는 Q, 즉 산출량이 많아야 합니다.
당연히 회전율도 높아야 하고요.
그런데 출생률이 적어지는 상황에서 산출량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죠.
사업 구조와 이익 시현이 산업 트렌드와 맞지 않았습니다.

추가로 중국 시장 진출도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독] 코로나에 숨은 탐욕 '동그라미 산후조리원'의 몰락 - 문화저널21
그도 그럴것이 국내 시장에서도 확실하게 시장 장악을 하지 못했는데 신시장 진출을 선언하다니...
아무리 봐도 무리였습니다.
물론 당시에 투자처를 미친듯이 찾아다니던 벤처캐피탈들에게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높은 출생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시장 진출'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사업 기회처럼 보였겠지만 저는 오히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걱정인형입니다)
더벨 - 국내 최고 자본시장(Capital Markets) 미디어
더 큰 문제는 내부통제도 엉망이었다는 것.
중국 시장 진출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지점에서의 기본적인 자금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결국 일종의 폰지사기에 해당되는 '고객 돈으로 고객 돈 돌려 막는' 형국에 이르게 되다가 결국 법정관리행 특급열차를 탑니다.
물론 지분 투자자들 관점에서는 얼핏 괜찮은 투자처였을겁니다.
하지만 대출을 취급하는 채권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기업에 (여기서는 유형자산을 의미) 과도한 투자를 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죠.
그런데 고정비 부담이 과하다?
조금 잘못나가면 근간이 무너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기업은 중국 사업이 생각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자, 나중에는 은행을 상대로 임차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한다는 약정까지 제공하면서 자금을 끝어다씁니다.
이때 빠져 나왔어야 했는데...
늘 그렇듯이 '아는 형님이 부탁한 대출이라' 눈 감고 심사하는 것이 결국 발목을 잡습니다.
마지막에는 임대인 동의도 없는 임대보증금 양도담보계약서가 작성되고 그를 토대로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 담당자들은 사지로 몰리게 되죠.
안타까운 순간.
더 아쉬운 것은 이런 실패를 쉬쉬하는데 급급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이는 결국 조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본인들 사업이고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면 이런 투자는 안하지 않을까요?
다 지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오는 결정입니다.
인포맥스에 올라온 '산후조리원 월 평균 비용이 300만원에 도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쓴 글 입니다.
신사업 투자 심사와 연계해서 풀어봤네요.
아무쪼록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