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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Sep 20. 2022

런던 할머니

2016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둔 나는 모두가 만류한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수백 수천 번을 고민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 손에는 여권, 다른 한 손에는 몸집만한 이민가방을 들고 아무 연고도 없는 땅 영국에 도착하였다.


영국에서의 첫 반년은 ‘버텼다’는 말이 어울렸다.

생전 처음 만나는 도시와 사람들, 치솟는 물가와 하우스 렌트비, 품었던 꿈과는 반대로 계속되는 좌절들...

 계절을 지나 여름이 되었을 무렵,  마음은 한껏 각박해져 하루에도  번씩 ‘이젠 그만하고 집에 갈까 고민했다. 엎친  덮친 격으로 살고 있던 집의 계약기간까지 만료되어 쫓겨나다시피 길거리에 나가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패배를 인정하려 했던 9월의 어느 날, 축복과도 같은 일이 나를 찾아왔다. 런던 서부의 치즈윅(Chiswick)이라는 동네에서, 당신만큼이나 귀엽고 아기자기한 화단을 가꾸는 어느 할머니의 집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게 된 것이다.


당신을 'Mum'이라고 불러달라던 할머니께서는 아무래도 나를 당신 집 하숙생보다는 친손녀처럼 여기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집에서는 늘 푸근한 냄새가 났다. 늦은 저녁 현관문을 열고 텅 빈 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갈 때면, 거실 흔들의자에서 선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께서는 내게 주실 사과나 바나나를 가지고 나오셨고, ‘밥은 먹었니’, ‘오늘 하루는 어땠니’, ‘힘든 일은 없었니’ 물으시며 진심 어린 걱정과 애정을 쏟아주셨다. 종종 ‘너 또 밥 안 챙겨먹었지!’ 하시며 한사코 만류하는 내 앞에 당신이 좋아하시는 매쉬드 포테이토와 완두콩, 정어리를 요리해 내어주시기도 했다. 매일같이 차와 비스킷을 내주시던 할머니 덕분에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한동안 블랙티 없이는 하루를 나기가 힘들었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Catherine 혹은 Cathy라 부르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My little child, Treasure, Sweetheart라고 불러주시며 햇살보다도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셨다. 할머니의 푸른 빛 눈동자에서는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의 따뜻한 무게감이 느껴졌고, 그 순간이 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다정이었고, 받아본 적 없는 종류의 사랑과 관심이었다. 늘 스스로 괜찮다 되뇌던 나였지만 마음 붙일 곳 없이 허전했고, 따뜻함을 그리워하던 나에게 할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의 하루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할머니의 사랑에 난 몸 둘 바를 몰랐다. ‘Thank you’라는 말만으론 어쩐지 늘 부족한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었고, 할머니를 향한 나의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했던 일은 여행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예쁜 엽서를 사서, 그 곳에서의 감상과 정취를 한껏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해서 아쉬워’ 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께 그것은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도시와 자연에 대한 감상, 그리고 그 속에서 할머니를 떠올리는 순간의 기록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선물이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드려도 당신이 주시는 사랑에 비하면 부족할 것을 알았지만, 할머니를 향한 나의 각별한 애정을 그렇게나마 전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흔들의자 곁으로 유럽 곳곳의 계절과 풍경이 쌓여갔다.

 

2017년 2월, 행복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해야 했다. 귀국 전날, 나는 할머니께서 정성스럽게 가꾸시던 정원 앞에서 다정한 사진들을 남겼다. 치즈윅의 패셔니스타답게 자주색 베레모를 쓰고 수줍은 웃음을 보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 인화해서 꼭 다시 가져올게요’ 라며 안녕을 고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약속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리움과 함께 내 마음 속 작은 부채가 되었다.


세상엔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결국 그들 중 누군가와는 멀리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추억할 아름다운 인연들을 알게 된 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는 사실 간단하면서도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슬픔은 애초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일지도, 내가 아직 다 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젯밤엔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조금 더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여전히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 아마 이제 아흔 세가 좀 넘으셨겠지. 할머니께서는 ‘Mum!’ 하고 당신 품에 내달리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셨지만, 아마 나를 잘 기억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많이 서툴러진 영어로 할머니께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ㅡ사과, 정어리, 블랙티,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귀국을 앞둔 어느 겨울, 화단에서 함께 찍은 사진까지.

할머니께서는 말없이 싱긋 웃어보이셨고, 나는 그저 꼬옥 안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침대에 앉아 지난 꿈의 여운을 곱씹었다.

창밖으로 플라타너스 잎이 노랗게 나부끼고 있었다. 할머니께 처음 인사드렸던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는가보다, 그래서 꿈에 찾아오셨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품을 떠난지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부디 멀지 않은 훗날 다시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혹여나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하시더라도, 무엇보다 그저 건강하시기를.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작은 염원 하나를 실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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