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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Oct 12. 2022

안식처 수집가

안식처가 있는 세계는 평화롭다. 모두들 이 세상 한 켠에 작은 안식처들을 품고 산다면 매일에 대한 기대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차갑고 날선 언어들이 오가고, 때때로 무거운 고민들이 일상의 평화를 침범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편히 숨쉴 수 있는 곳의 소중함을 깨달아갔다.

그리하여 난 크고 작은 안식처들을 수집하며 살아왔다. 어린 날 작은 보석상자 속 크리스마스 씰과 우표를 수집하던 마음으로.     

 


-첫 번째 안식처

학창시절 내 안식처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산도서관이었다.

날아다니는 접시와 비수 같은 말들을 외면하기 위해 나는 어딘가로 달아나야 했으나, 유흥과 비행을 알기엔 너무 소심했고, 서울 곳곳의 지리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아는 세상은 손바닥만큼 좁았기에,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하여  손바닥  세상에서   있는  가장  곳으로 도망을 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피는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세상의 문을 열게 해주었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책이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신호탄이었다. 빼곡히 차 있는 서가를 돌고 있자면 마치 세계여행을 하는 듯 했다. 멕시코 문학, 러시아 문학, 일본 문학. 서가 사이사이를 돌며 소매자락마다 책먼지 냄새를 묻히고 다닐 때면, 내가 모든 대륙을 횡단하는 탐험가인 양 느껴졌다.


사실 난 남산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했다. 먹먹하고 푹푹한 냄새가 나는 1층 식당에서 1,500원짜리 우동을 먹는 일은,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 사이로 색색깔로 빛나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일은, 고약한 은행냄새를 맡으며 집에 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모두가, 나의 유년시절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었다.


매년 12월 31일, 남산도서관은 유난히도 한산했고, 연말연시의 분주함을 이해하기엔 난 마냥 어렸다.

'12월 마지막 날이면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모두들 자리를 비워 한산해진 열람실 한 구석에 작은 다이어리를 챙겨 앉았고,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와 새해의 다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것은 나만의 의식과도 같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해의 가장 마지막 날을 그런 근사함 속에 보냈다. 405번 버스를 타고 남산순환도로를 내려올 때면 다이어리에 써내려간 문장들이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춤을 췄고, 이내 내 마음 한 켠에 내려앉아 새해의 청초한 기운과 함께 부피를 키워나갔다.     


‘내년엔 분명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내게는 올곧은 믿음이 있었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 또한 나의 유년시절 매해 몸집을 키워나가던 나만의 안식처였다.   



-가라앉은 섬

스물 여덟의 2월, 생일을 맞이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를 거닐다 막다른 골목에 숨겨진 카페를 발견했다.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카페답게, 한옥을 개조해 만든 그 카페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현대에 맞춰 재해석했고, 카페 곳곳에 작은 식물들이 앉아 귀엽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카페에서는 항상 공간의 무드와 완벽히 어울리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꽤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는 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었다. 모르는 노래들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쉽지 않은데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항상 따뜻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고, 운치 있었으며, 마침내 평온했다. 언젠가 한 번쯤 한 곡쯤 사장님께 제목이 뭐냐고 여쭙고 싶었지만, 갈수록 내향형 인간이 되어가는 나에게 그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항상 같은 소파에 앉아 쉬는 갈색 비숑은 놀라울 정도로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그 포근한 털뭉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이 풍경에 꼭 필요한 온기를 그 아이는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 카페를 애정했다. 나만의 별장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주 많이 사랑했다.

어쩌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낸 사장님의 취향을 사랑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곳은 아주 오래도록 나의 안식처가 될 사실이 자명했다. 카페의 한적한 평일을 점유하고 싶은 마음에 월차를 내기도 했고, 회사에서 종로구로 향하는 퇴근버스라도 타는 날엔 편도 한 시간의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콩닥거렸다.


내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카페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떤 날이고ㅡ울적한 날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하루 끝에도, 아무 일 없이 무료한 날에도ㅡ 편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카페는 나의 첫 책이 탄생한 마굿간이었다.

매일 아침 사장님의 어머니께서 만드신다는 무해함 한가득의 케이크를 베어먹으며, 갓 내린 따뜻한 라떼를 호호 불어가며 글을 써내려가는 일은 내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한 안도감을 주었다. 비록 소장용이긴 했어도, 나의 첫 책의 네 귀퉁이를 바로 그 카페가 차지했던 것이다.


언젠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카페 사장님과 친구가 된다면 ‘이 곳 덕분에 제 책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사실 책을 쓰겠다는 결심조차 이 곳에서 써내려간 일기 덕분이었어요, 그러니깐 이 공간은 제 뮤즈라고 할 수 있죠’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책 한 권을 주섬주섬 꺼내 선물하고 싶었다. 책을 꽂아둘 서가는 없었지만, 만일 서가라도 있는 카페였다면 어딘가에 내 책을 숨겨두고 킥킥대는 즐거움을 가지고 싶었다.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에서는 매년 수십 개의 섬들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가라앉는 섬을 바라보는 심경에 비할 데는 없겠지만, 얼마 전 나 또한 가라앉은 안식처를 바라보며 이를 데 없는 슬픔을 통감해야 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오후, 나는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카페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달엔 또 어떤 디저트가 새로 출시되었을까, 오늘은 무슨 노래가 흘러나올까,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얼마나 운치있을까. 다 이름붙이기도 어려운 설렘들이 가슴께에 차올라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총총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설렘 끝 마주한 네 글자는 ‘영업종료’.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곳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진다고? 그럼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후회는 언제나 우리의 시간보다 한 발짝 늦게 찾아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사장님께 노래 선곡 비결을 여쭤보고 플레이스트를 공유받을걸, 작은 솜뭉치 비숑에게 좀더 저돌적인 애정공세를 펼쳐볼걸, 이 곳에서 탄생한 나의 첫 책을 선물해 드릴걸, 이 카페가 무지무지 좋아서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주접을 떨어볼걸.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와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할걸.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카페 앞을 두리번거렸지만 카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내 안식처의 소멸을 나는 영영 받아들여야 했다.     


‘언제까지 이 카페가 영원할까, 이 곳이 사라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이 카페에 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의 자녀의 손주까지 이 카페를 운영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내게 안녕을 고할 줄이야.

대한민국에서는 매일같이 수십 수백 개의 카페가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기사를 보며 나는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안식처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편히 숨쉬게 하는 공간이 언제고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지구상의 무해한 공간들에 좀더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문득 상수역에 자리잡은 미용실, 우리가 처음 만난 겨울날이 떠올랐다.


“시담씨 머리는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요. ”

이토록 따뜻한 사형선고가 있을까.

사실 난 항상 내 머리카락에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손재주가 없는 주인을 만나 그 흔한 고데기도, 드라이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지저분해 보인다’는 오명을 달고 다니는 아이들.

하지만 선생님의 ‘어쩔 수 없다’는 그 짧은 두 마디에 난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니던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제멋대로 자라기로 타고난 아이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네가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아주 따뜻하고도 단호한 위로였다.      

내 머리카락에 대한 모종의 연대감과 책임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선생님과는 벌써 햇수로 4년째 함께이다. 그러니까, 4년째 함께하고 있는 위로이다. 그 시간들이 쌓아올린 유대감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편안함을 얻게 되었고, 늘 미움만 받는 내 머리카락들도 안식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미용실로 향할 때면 ‘세련되지 못하고 지저분한’ 머리카락에 대한 짐을 한껏 내려놓고 편안한 휴식에 돌입한다.


쉬는 날이면 유기견들을 위한 봉사카페를 운영하고, 방문할 때마다 양손 가득 샴푸와 트리트먼트 샘플을 챙겨주시는, 추운 겨울날에는 핫팩 하나를 품에 넣어주시는 우리 선생님. 선생님은 내가 미용실을 나설 때마다, 나와의 작별을 못내 아쉬워하시던 우리 친할머니처럼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오신다.

“시담씨 조심히 잘 가요~” 따뜻한 인사가 등 뒤로 내려앉는다.


문득 초등학교 소풍 시간에 자주 하던 보물찾기 놀이가 떠올랐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던, 수풀 곳곳에 숨겨져 있던 그 때 그 시절 보물들.

내가 이 세상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 세상 곳곳의 모퉁이를 들여다 볼수록, 깨끗하게 온전한 안식처를 만날 확률이 더 짙어질까?

불편함과 시기, 질투와 험담이 오가는 곳을 만나는 일도 때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욕조물에 몸을 푸욱 담근 듯한 온기를 만나게 될 가능성에 대한 배팅이라면, 가끔의 모질음, 짖궂음, 괴팍함을 조금은 인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보다 한 발 빨리 이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다음 번 미용실을 찾을 때에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나의 무해한 언어들을 선생님께 전해드려야겠다.


'오늘도 제 고민의 무게를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제멋대로인 아이들 때문에 늘 고민이었거든요. 마치 축 늘어진 머리카락의 무게만큼이나 말이에요.

하지만 이 곳을 향할 때마다 제 발걸음은 가벼워집니다.

선생님의 손길 덕에 내일은 회사에서 좀더 당당히 고개를 들고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깐, 전장으로 나가기 전 든든한 갑옷으로 갈아입은 느낌랄까요. (웃음)

선생님, 언제나 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따뜻하게 바라봐 주시는 거 다 압니다. 그 귀한 마음을 저는 당연시할 수 없어요. 쑥스러움이 많아 한 번도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건네주시는 따뜻한 온기 덕에 제 하루가 좀더 온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이 곳에서 늘 저와 함께해 주세요.

- 사랑을 담아, 김시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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