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목나무와 매미 Mar 14. 2024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포용한 자신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2024)를 읽고

 '나'는 사회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 대본을 쓴다. 그러면서 얼굴이 종양으로 뒤덮인 고등학생, '윤주'와 가까워진다. '나'는 '윤주' 더 많은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술을 미루자고 제안했다가, 종양이 악성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듣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나'는 벨기에로 도망치듯이 떠난다. 신문에서 읽었던 한 탈북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가진 채. 벨기에에서 '로'의 궤적을 따라가고, '박'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2023)의 '나'는 현대인의 상처들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지친 '나'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의 현상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나는 제법 성공적으로 사회화되었다. 적당히 타성에 젖어 있고, 열정은 근거 없는 악의나 질투에 쏟아붓고, 책임을 두려워하고, 그 누구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는, 충분히 자족적인 사람. 그러면서 늘 결여되어 있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

62쪽


작품 초반에 설명되어 있는 지친 '나'의 모습에 완전히 공감해, 그 이후로 이어지는 여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나'의 내면뿐만 아니라 탈북인, 불법 이민자, 난민, 안락사를 고민하는 환자 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유럽으로 왔지만 한국에 갈 수 없는 '로'. 중국에서 '로'는 지워졌다. 벨기에에 온 이후, 난민 지위를 받기 전까지 '로'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을 드러내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박'은 주변인의 죽음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안정된 직장,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나'가 '로'와 '박'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주변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웃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236쪽


 '나'는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고,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여정을 통해 내면을 치유한다. 벨기에로 오기 전 '나'는 윤주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 '재이'에 대한 진심, 일에 대한 진심을 외면했다. '로'와 '박'의 시절을 느끼며 더 이상 자신의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던 걸까?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진하게 겪고 나서야 스스로를 포용하고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타인을 이해하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수용할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삭막한 시기에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나'가 '로'와 '박'에게 공감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읽으며 나 역시 외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된다. '윤주'의 귀에 숨겨둔 마음을 조심스레 꺼낸 '나'처럼, 읽는 이가 각자의 아픔을 드러내고 공유하며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풍경과 그렇지 못한 주인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