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무서운 노래

담원의 엽서 Vol.2 pistcard040

내겐 너무 무서운 노래

부제: 노래의 타임머신 기능


노래에는 타임머신 기능이 있다.

특정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마침 흘러나왔거나

그 상황에 딱 맞는 가사였던 노래는

세월이 흘러 듣게되어도

과거 그 상황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내게도 그런 노래가 몇개 있다.


오늘 엽서에 쓴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는

10살 무렵의 어린 시절로 나를 타임슬립 시킨다.


내가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 입구에는

버스정류장과 2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2층은 극장이었는데,

언제나 화공들이 직접 그린 상영작의 간판이 붙어있었고

1층의 한켠에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저물어 어두운 시간에

나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고

등 뒤의 레코드 가게에서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그 노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흥겹고 발랄하게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때의 상영작은 하필이면

<지옥의 카니발>이었다.

문제난 어떤 화공인지 모르지만 심하게 솜씨가 좋았고

거대한 상영간판에 영화장면을 과한 퀄리티로 그려서 걸었던 거다.


무심코 한번 쳐다봤다가 기겁을 하고는

그 이후로 시선을 올리지 못했다.

2층간판쪽을 보게될까봐

땅바닥만 쳐다보고 건물을 등지고 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무서웠다.

레코드 가게는 매우 밝게 등울 켜놓았는데

등뒤에서 쏟아지는 조명이

내 그림자를 크고 검고 괴이하게 늘어뜨린데다가

간판의 그림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계속 반복되어 흘러나오던 그노래.


나는 아직도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를 들으면

가위에 눌렸을 때와 비슷한 공포감과 함께

2층 건물 앞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간다.


담원글 그림 글씨


#노래의타임머신기능 #사랑은연필로쓰세요 #지옥의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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