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4)

기영이(2)

by 마짝꿍텝
아니, 지금은 화가는 아닌데 예전에 미술을 전공했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결혼하면서 포기했대


또각, 또각, 또각.

교실 복도에서 날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운동화 바닥이 먼지를 끄는 소리도 아니고, 실내화 끌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뾰족구두 굽이 나무 바닥을 찍는 소리였다.


한 여자가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긴 파마머리에는 보랏빛 염색이 감돌았고, 끝이 날카롭게 올라간 선글라스가 콧대 위에 걸쳐 있었다. 몸매가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원피스, 팔꿈치를 넘어 팔 위까지 올라오는 오페라 글러브, 손끝에 들린 작은 핸드백까지. 얼핏 보기에도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핸드백은 꽤 비싸 보였지만, 정작 그 안엔 별로 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 바로 뒤로 교감이 헐레벌떡 따라오고 있었다.
대머리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살이 너무 쪄서 안경테 일부가 얼굴에 파고든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교감은 손에 쥔 체크무늬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아가며 여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 그… 저기… 학부모 되세요?”


여자는 자신을 불러 세운 것이 꽤나 불쾌하다는 듯 눈을 한 번 치켜뜨고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저 5학년 4반 이기영이 엄마 되는데…”


복도 쪽을 기웃거리던 몇몇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다리는 얼굴들이었다.

교감은 난처한 표정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냈다.


“죄… 죄송하지만 여기는 신발을 버… 벗고 가셔야 합니다.”

원래 말을 잘 더듬는 교감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심했다.


여자가 발끝을 한 번 내려다봤다.

“벗어야… 하나요?”


“네? 아… 그 벗어야 하긴 하는데…”


“여기서… 벗을까요?”


여자의 기세에 눌린 것이었을까.


교감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 뭐 아닙니다. 학부모 차… 참관 수업 오셨지요? 4… 4반은 저쪽입니다. 네, 들어가 보세요.”


여자는 왼손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4반 명패를 확인하더니,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칠판 앞에 서 있던 교사와 교실 뒤를 점령하고 있던 부모들, 수업 준비로 소란하던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잠깐,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바로 술렁임이 번졌다.


“뭐야? 연예인이야?”

아이들 소곤거림이 교실 벽을 타고 여기저기로 튀었다.


“기영이 엄마래. 나 아까 복도에서 들었어.”

안경잡이 영재가 늘 그렇듯 코받침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여자애들이 먼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연예인 아냐? 티브이에서 본 것 같은데?”


“와… 진짜 예뻐. 최지우보다 예쁜데?”


그때 누군가 무심코 말했다.

“아닌데. 내가 지난번에 기영이 엄마 봤는데 저 사람 기영이 엄마 아닌데.”


그 한마디에 교실 공기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응? 그럼 누구야?”


“몰라, 기영이 이모 아냐? 딱 봐도 엄청 젊잖아.”


“아냐, 내가 들었어. 기영이 엄마라고 자기가 그랬어.”


교실에 들어온 뒤로 여자는 자꾸만 기영이 쪽으로 눈을 맞추려 했고,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도대체 저 여자가 누구냐는 설왕설래가 한참 이어졌지만, 요즘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던 기영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를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현도 기영 엄마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절대 기영 엄마가 아니었다.

정현이 기억하는 기영 엄마는 평범해 보였지만, 어딘가 범접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많지도 않았고, 옷차림도 수수했다. 그런데 지금 교실 문 앞에 선 여자는 정반대였다. 너무 화려했고, 너무 과했고, 너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현이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자~ 조용!!!”

안 선생님 아니,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을 꼭 닮은 김영락 선생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잠시 튀어다니던 소리들이 금세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기영아~ 엄마 왔어.”

여자는 나름 소곤대는 척했지만, 교실에 있는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기영을 불렀다.


그리고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 씨발!”


기영이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기영에게 꽂혔다.


기영은 얼굴을 새빨갛게 달군 채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누가? 누가 우리 엄만데?”


그리고는 그대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현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따라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김영락 선생이 소란 피우지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영락 선생은 잠시 다른 학부모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원피스 차림의 여자를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교실 안에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둘이 무언가를 한참 주고받았다.


나중에 가영이를 통해 듣게 된 사실은 이랬다.


기영 부모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이혼했고, 기영 엄마는 결국 화가의 꿈을 찾겠다며 기영과 가영이를 두고 프랑스인지 이탈리아인지, 유럽의 어딘가로 떠났다고 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데리고 온 새엄마, 그러니까 그날 학부모 참관 수업에 나타난 바로 그 여자와 기영, 가영은 함께 살게 되었다. 가영 말로는 그 새엄마라는 사람이 어디 술집에서 일하던 사람 같다고도 했다.


기영 아버지는 자신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들 먹이고 교육하는 일만 신경 쓰라고 했고, 다른 집안일은 굳이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다.


그 뒤로 기영과 새엄마 이야기는 꾸준히 구설수에 올랐다.


누가 한마디라도 입에 올리면 기영은 바로 그 애를 잡아 족쳤다. 기영 주먹은 또래보다 배는 셌고, 기영이 점점 엇나가는 것 같아 정현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옆에서 어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6학년이 되면서 반이 갈리고 나서는 기영이 더 난폭해졌다는 이야기만 가끔 건너들었다.


그 뒤로 정현은 더 이상 기영네 집에 놀러 가지 않게 되었다.


기영 역시 더는 자기 집에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둘 다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교실을 뛰쳐나가던 그날의 기영 얼굴을 정현은 오래 잊지 못했다.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다시 같은 반이 됐을 때, 정현은 그날의 얼굴이 그대로 식어버린 것 같은 기영을 보게 됐다. 더 차갑고, 더 냉랭하고, 더 쉽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얼굴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동안 기영네 집은 꽤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기영 아버지가 원양어선에서 벌어 온 돈으로 투자한 선박 사업이 잘돼 바다가 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말이 돌았고, 에쿠스를 몰고 학교까지 데려다준다는 소문도 있었다.


기영 새엄마는 치맛바람으로 유명했다.


여전히 진한 염색머리를 하고, 야시시한 옷을 입고 학교를 들락거렸다. 게다가 학부모 대표와 학부모 배구팀 대표까지 맡고 있었다.


기영은 보통 도시락통 크기를 한참 넘는 찬합에 도시락을 싸 왔다.


소시지와 돈가스가 칸칸이 가득 들어 있었고, 맨 아래 칸에는 과일까지 보기 좋게 잘려 담겨 있었다. 그래서 기영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마다 아이들이 “나 이거 한 입만 먹어도 돼?” 하며 개미떼처럼 몰려들곤 했다.

하지만 그 새엄마가 어떤 술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느니, 극장 앞 오거리 쪽 홍등가에서 봤다느니 하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에게는 괜히 귀가 솔깃해질 만한 성적인 뉘앙스가 따라붙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런 소문은 더 질기게 퍼졌다. 정현은 누가 그런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단단히 주의를 주곤 했지만, 소문의 싹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오늘 진방과 기영이 싸운 것도 사실 그 때문이었다.

얼마 전 진방이 자기 큰형이랑 홍등가 앞을 지나는데 기영 새엄마가 “총각 오이 좀 닦고 가” 하고 호객행위를 하더라고 떠벌린 적이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 자체가 워낙 상상력을 자극했다. 교실은 금세 술렁였고, 그 얘기를 들은 기영이 곧장 책상 위를 넘어 진방에게 달려들었다.


진방도 키는 작지만 덩치가 있는 편이라 밀리지 않았다.
둘은 서로 멱살을 움켜잡은 채 몇 번이고 주먹을 주고받았다.


“야, 그만!”

정현이 가장 먼저 둘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미 열이 꼭대기까지 오른 둘은 정현 말 따위 들을 기색이 없었다. 기영 주먹이 한 번 더 날아가고, 진방도 욕설을 퍼부으며 밀어붙였다. 책상 하나가 밀리고, 공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의자 하나가 둘 사이 바닥으로 거칠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우당탕!


의자 다리가 책상과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다.


기영과 진방이 동시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후였다.


“아 씨발,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해라.”

정후는 언제 들어왔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방금 굴러 들어간 의자는 싸우고 있던 둘 다를 향한 경고처럼 놓여 있었다.


기영과 진방이 잠깐 주춤한 사이, 정후가 먼저 진방 가슴팍을 힘껏 밀었다.
정후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진방이 책상 하나와 함께 뒤로 밀리며 휘청거렸다.

그 틈에 정현은 기영 양어깨를 붙잡고 청소함 쪽으로 밀어냈다.


“야, 그만하라고 했지!”


기영은 이것 놓으라며 온몸으로 버텼다.


다시 진방 쪽으로 달려들려고 어깨를 뒤틀고 팔을 휘둘렀다. 정현은 상체 중심을 앞으로 낮춰가며 가까스로 버텨냈다. 기영의 숨이 거칠게 튀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달려들 기세였다.


그 순간 정현은 오른손 주먹을 쥐고, 기영 얼굴 바로 옆 뒤편에 있던 게시판을 힘껏 내리쳤다.


쾅!

나무 합판 위에 녹색 부직포를 덧댄 게시판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뚫렸다.

교실 안이 순간 얼어붙었다.


싸움을 구경하던 아이들 입에서 동시에 “와…”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영이도 놀랐는지 몸을 순간 새우처럼 움츠렸다.


정현 주먹이 자기 얼굴에 들어온 줄 알았던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더니 김재덕 선생이 들어왔다.


“야!! 너네 뭐야?”


실제 싸움의 당사자는 진방과 기영,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말리던 정후와 정현까지 선생 눈에는 한 덩어리로 보인 모양이었다.

“야, 정현이. 조정현! 너 이 새끼 반장이라고 좋게 봤더니 애들이랑 싸움을 해?”


“선생님, 그게 아니고…”


김재덕 선생은 아예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을 잘랐다.

“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지금 다 봤는데. 너부터 교탁에 발 올려.”


“선생님, 저는 싸움을…”


“야!!!!”


교실 공기가 확 울렸다.


“선생님, 저는 싸움을 말리려고…”


“너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발 올리라고 했어, 안 했어?”


“선생님, 저는 맞을 짓을 한 적이 없…”


“저기 게시판 네가 주먹으로 쳐서 부수는 걸 봤는데 맞을 짓을 한 적이 없어?”


정현이 잠깐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자, 김재덕 선생 표정이 완전히 변했다.
자기 말에 계속 대꾸했다는 이유만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얼굴이었다.

그는 손목에서 시계를 풀더니, 아무 경고도 없이 손을 휘둘렀다.


짝.

정현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피할 생각도 못 했다.
놀랐고, 당황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짝. 짝. 짝. 짝.


사방에서 손이 날아들었다.


뺨이 다시 돌아가고, 어깨가 밀리고, 가슴팍에 주먹이 박혔다.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다리 쪽으로 차는 힘까지 들어왔다. 정현 몸이 잠깐 붕 뜨는 것 같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정후도 맞고 있었다.
진방도 맞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영만은 맞지 않았다.


김재덕 선생은 상황 설명은 듣지 않은 채, 철저하게 기영만 비켜 가며 정현과 정후, 진방 세 사람에게만 체벌을 퍼붓고 있었다.


그 순간, 주걱이 크게 휘둘러졌다.


빠각.

좋지 않은 소리였다.


진방 머리가 옆으로 크게 꺾이더니, 이마 위쪽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진방이 그대로 옆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정현은 직감했다.

이건 사고였다.

“진방아! 괜찮아?”


사실 그 순간에는 자기가 얼마나 맞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현은 곧장 진방 쪽으로 기어가듯 다가갔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선생님, 진방이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미친 듯한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부를 말이 여전히 ‘선생님’밖에 없다는 사실이 정현은 몹시 유감스러웠다. 그래도 지금은 진방부터 챙겨야 했다.


그제야 김재덕 선생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얼굴이 됐다.


아이들에게 자습하라고 소리친 뒤, 진방을 냅다 둘러업고 양호실로 뛰어갔다.

교실 맨 뒤 거울에 정현 얼굴이 비쳤다.


한쪽이 퉁퉁 부어, 거의 남의 얼굴 같았다.

그때 정현 머릿속에 딱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담임인 김영락 선생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

마침 김영락 선생은 3반에서 국어 수업 중이었다.


정현은 앞문을 다급하게 두드렸고, 허락을 기다리지도 못한 채 문을 열었다. 선생과 3반 아이들이 일제히 정현을 쳐다봤다.


“정현아, 너 얼굴 왜 그래?”


“선생님, 진방이가 다쳤어요.”

그 말만 겨우 꺼내고, 정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김영락 선생과 함께 양호실로 뛰어가는 동안 정현은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슬램덩크 안 선생님처럼 늘 온화하던 김영락 선생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양호실에 도착했을 때, 진방 머리에는 이미 붕대가 감겨 있었고, 김재덕 선생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김영락 선생은 말없이 양호실 안으로 들어가 잠깐 진방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재덕 선생 멱살을 움켜잡았다.


말 그대로 질질 끌듯이.

그를 복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계속)



* 주의: 본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나 지명 등은 실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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